앙트의 포켓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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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는




12월이면 떠오르는 두 사람.
6년 전에 외할머니가, 3년 전엔 제자가  각각 세상을 떠났다.

남동생이 없는 내게 꼭 친동생 같았던 고운 여주가 20대도 다 끝내지 못하고 간암으로 떠난 날이 18일이었다.
생긴 것도 하는 짓도, 성격까지.. '곱다'는 말을 쓸 만큼 모가 없고 여린, 소년 같은 청년이었는데,
안고 있던 B형간염인자 탓이었는지 군생활 말미에 늦게 알게 된 간암이 전역 후 그를 앗아갔다.
그 누가 천형을 앓는다 해도 내가 모르면 마음 아플 수 없지만, 곁에서 친 동기간 같은 이가 급작스런 지병으로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못견딜 것이었다.
아주 어려서 형을 잃고 외아들처럼 살다가 허망하게 세상을 떴으니 그 부모는 오죽할까...
여주는 어렵게 보훈지정을 받아 지금 임실호국원에 안치되어 있다.

돌아가실 때의 외할머니는 향년 104세였다.
보기 드문 장수임에도 병원에서의 마지막 일주일 정도를 빼고는 항상 속옷과 요강을 손수 챙기실 정도로 심신이 정정하셨던 할머니는, 그해 겨울 감기가 심해져서 병원의 호흡보조기를 써야 할 만큼 힘들어 하다가 기진맥진한 잠결 중에 돌아가셨다.
감은 눈, 가뿐 숨으로 헐떡이는 턱과 가슴, 고요한 손...  임종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장례식장에 바로 모시지 못하고 새벽 잠깐 쓰시던 방에 뉘울 때  내 팔에 안겨 들린 할머니 시신의 가벼움이란.. 말로 못할 '허망함', '안쓰러움' 같은 것.
난, 내 성정이, 체질이 할머니를 빼닮았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그러기를 간절히 소망할 만큼 할머니의 삶을 깊이 새기고 있다.

90년 첫 발령 때 자취 살림으로 쓰라고 손수 감아 주신 실패 세 개, 검정실이 좀 줄었을 뿐 아직 여전한데, 사진 찍으려 찬찬히 보니 X자로 감은 실 중 몇 가닥이 심을 돌지 않고 바깥쪽에서 그냥 감겨 올라간 게 보인다. 90대 초반에, 늦동이 쌍동이 손녀들을 곁에 끼고 양 무릎에 걸친 실 세 타래를 실패에 감는 것은 상당히 지루하고 졸리는 일거리였을 테지. 실패 심으로 쓰인 건 초등학생용 헌 공책, 지금은 다 커버린 숙녀 동생들의 국어공책이지 싶다.
부엌에서 구멍 맞추며 연탄 갈고, 팔을 벌려 양손에 실타래를 걸고 올을 풀어 주며 할머니와 함께 실을 감던 때가 있었다.


[19년 된 실패와 할머니의 빨간 주머니]



[실패 심으로 쓰인 건 헌 공책, 위쪽에 칼집을 내어 실 끄트머리를 끼웠다]



[생김새와 성정을 모두 물려 주신 것 같은(또는 그랬길 바라는) 할머니]




그리고..                  이사를 했다.

정기적으로 전근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탓에 이사가 잦을 수 밖에 없는데, 군 전역 후 초임지 관사에서부터 치면..... 무려 열 번째다. 게다가 전근할 때마다 대부분 사무실을 별도로 받기때문에 사실상 스무 번, 이삿짐 정리에 이골이 났다.
장담할 수 없지만 마지막이라고 여겨도 좋을 만큼 오래 있을 집을 구하면 꼭 들여 놓고 싶은 게 있었다. 대나무를 닮아서 동양적 느낌이 물씬 나는 '드라세나 고드세피아나'가 그것. 사람 가슴 높이 쯤으로 자란 화분으로 들여 직광이 반나절 닿는 창가에 두니 딱 좋다. 그러니 당분간은 이사를 잊어버리려나 보다. 이제 마삭줄 곡선을 절도 있게 가꿀 차례다.


[부엌 창 너머로 보이는 불빛들은 전미동이거나 삼례거나..]



1. 부억 창밖으로 보이는 송천동 끝자락
2. 햇살 닿은 고드세피아나
3. 위로 터진 거실
4. 레드와인이 어울리는 하얀 씽크대



지난 여름 독일에서 함께 간 동료들이 '휘슬러' 주방기구들을 한보따리씩 사던 걸 상기시키는 스테인리스 냄비세트를 봤다. 현지의 값이 국내의 절반 정도라던 아줌마 동료들의 말도 떠오른다. 정말 그때 그 값의 곱절은 되는 군. 부엌살림(?)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그릇류의 틈새 또는 이음새의 청결 문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냄비들이다. 그런데 보통 냄비에는 다 있는 뚜껑의 증기구멍이 없다. "혹, 조리할 내용물이 한식과 달라서 그런 건 아닐까.."라는 억지스러운 걱정을 핑계 삼아 눈을 다른 냄비로 돌렸다. 역시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깔끔한 디자인의 것인데 뚜껑에 걱정(?)했던 증기구멍도 있고 윗면이 유리로 되어 내용물의 상태를 볼 수도 있다. 부분부분 이음새의 청결 어쩌고 하던 건 싹 잊고는 그 세트를 덜컥 사 들고 왔다. 포장을 뜯고 하나씩 꺼내다가 뚜껑 하나를 내부쳤다(떨어뜨렸다). 떨어져도 왜 하필 뚜껑 손잡이가 바닥으로 향했을까... 자동차 앞유리에 돌 맞은 형상이다.

그래, 전체가 그냥 다 '스뎅'으로 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안전(?)하게 깨진 냄비 유리뚜껑]




                  1월 첫 주말에 덧붙이는글                                                                                                                                    

그렇게 며칠이 지나  이젠 1월.
2009년 1월.
매일, 그놈이 그놈일테지만, 12월 말일에 지는 해와 1월 첫날 뜨는 해는 매우 달라 보인다.
뭐가 달라 보이는지 확인할 만만한 곳이 근처엔 없어 여수 향일암까지 매번 첫 '해'를 찾아간 12월 31일을 이번엔 무심히 지나쳤다. 분명 나이는, 전부는 아니겠지만 삶의 일부 어떤 것 정도는 덤덤하게 만들어 버리는 은근한 능력을 갖고 있는 거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녘을 물들이며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에는, 그것이 어제와 내일 다시 똑같을지라도 오늘 만큼은, 내가 바라는 바를 들어줄 것 같은 영험함이 있어 보인다.

[겨울 아침 첫 햇살은 여기에서 뻗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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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6 18:39 2008/12/2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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