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지나가는지, 지나가는 무엇이 있기는 한지..
주마등처럼 상상력을 굴려도 절대 열거해낼 수 없을 세월을 짐작하느라
경외심을 모두 소모해버린 내게
나무는 무심이다.
때가 오고가는 숱한 반복도
그것을 '세월'이라 부르는 것도 '나'일뿐,
그 자리에 서 있음으로 간직해온 백 년 천 년의 시간은 내게만 지나간 것일뿐
그동안을 온전히 지켜온 나무는
처음엔 심겨졌지만 이제는 스스로 있는데,
아스라히 먼 하늘의 어느 별빛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함께 살았던 별의 흔적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의 거대한 공간이 그 거대한 괴리 속에 녹아든 세월이
나무 앞에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내가 한 점으로 찍힌다.
소양 송광사 가는 길, 벛나무길
'전주'와 '전주 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