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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이튿날, 진학실에서.



낯설다는 건
더이상 습관처럼 익숙해진 일상이 아니라는 것.

어제까지 한 해동안 지켜왔던 분명한 그 자리에 다시 앉았는데도
방학이어서 아무도 없는 진학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야말로 쥐죽은 듯이 고요한 복도와 운동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일이면 다시 애들을 볼 수 있는 일요일 같은 휴일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애들은 없을 거라는 이유만으로
이 사무실이 낯설고 이 정적이 낯설어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거다.

고개들면 보이는 맞은 편 벽에 걸려있는 달력이
어느새 2002년 것으로 바뀌어져 있음을 문득 알아채자
잽싸게 바꿔 걸은 그가 얄밉고
새 달력이 의례껏 그러듯 2002년 달력 첫 표지에 화석으로 남은 12월 날들이
낯설면서 아쉽다.

그럴거면서 왜 나와있냐고...?
그럴줄 알면서 왜 나와있냐고...

후기원서를 써야한다.
처음 원서를 쓸 당시엔 망설이기도 하고
때로는 학부모를 만류하기도 했지만,
그런만큼 원서를 쓰면서 이미 불합격을 예상하기도 하지만
사람맘이 어디 그런가...
써놓고 접수하면서 부터는 마음 한 켠에서 그래도 붙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불합격 당사자보다는 덜 하겠지만 담임 역시도 가슴이 아프다.

이 긴 방학을 그들은 어찌 보낼 것인지...

방학하는 날 출장이어서 애들 얼굴을 보지 못하고 종업식을 흘려 보냈는데,
애들은 한 달동안 자기네 담임을 못볼 방학을 맞으면서
종업식 때 마저도 담임을 못봤는데
내게 전화 한 통 없다.
그런 것인가... 세월이 쌓여 시대가 그렇게 바뀐 것인가...

내가 먼저 그들을 불러 얼굴이나마 보고싶지만 참는다.
그들에겐 지금 방학이라는 사실이 담임 보는 것보다 더 큰 의미일테고
입시 준비로 기진맥진했던 그들에겐 그럴 것이 당연한 것이니...
전주에선 마지막 담임이라는, 나한테만 특별한 이 이유는
그들을 자꾸 보고싶어하는 까닭이 되기에 큰 설득력이 없는 걸 안다.

다만,
그들 모두 중학 마지막 겨울이 저마다 나름대로의 보람을 찾는 시간이 되기를
그리고 모두 건강한 채 고등학생으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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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1 13:38 2001/12/2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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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1 13:38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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