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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또는 신학기에





언젠가, 정확히는 고사하고 어렴풋한 기억 마저 가물가물한 그 어느 때에
3월 아침 찬 기운 느끼며 등교를 위해 잠자리를 벗어 나오는 일이 생각으로 되살려 보는 것조차 진저리쳐질 만큼 싫은 적이 있었다.
흔한 막말 '꺽쩡스럽다' 정도를 넘어서는 그 묘한 짜증과 두려움.
그건 윗풍 센 시골 초가(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초가에 살았다)의 새벽녘 겨우 남은 구들 온기를 덮어 싼 이불 속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잠에서 깨어난 뒤 연 이어질 아침 일상이 걱정스럽고 싫은 탓이었다. 문틈으로 새벽 내 스며든 찬 기운에 일어서면 입김이 서릴 느낌이란, 분명 방 안에 있음에도 무릎 닳은 내복 차림으로 논 가에 세워진 듯했다. 그렇게 기상 해서 이불을 개고 나면 꽁꽁 얼어붙은(듯한) 고무신을 신고 흙마당에 나가 작두질(한 손으로 물 붓고 다른 손으로 펌프질하는)하고 싸늘한 아침 덕에 오히려 따뜻한(듯한) 물을 받아 겨우 괭이세수로 필수과정(엄마가 시킨)을 마치면 아침밥을 받는다.
그 다음 남은 건 몇 차례의 전쟁이다. 초가가 남아 있는 마을의 '엄마'가 꺼내 준 옷이 '내' 양에 찰리 없고, 몇 대 쥐어 박히며 그 옷 입는 와중에 떠들러본 도시락이 '내' 맘에 들리 없다.
그 뿐인가...
이상하게 아침밥을 다 먹고나야만 떠오르는 밀린 육성회비, 연필값, 뒷표지 안쪽까지 줄 쳐서 다 써버린 국어 공책, 끊어진 줄넘기줄... 어찌어찌(할머니가 한집에 계신 덕에) 전쟁을 끝내고 집을 나서면 한 시간 반을 책보 매고 뛰며 걸으며 학교로 향했다. 중간쯤인 방죽 옆 뚝길을 뛸 때쯤 밀린 숙제가 떠오르면 발길은 더욱 바빠지고 머릿속은 거의 '죽음'이다.

그러니 이른 아침 기상이 쾌적할 리 있겠는가...라는 질문 같은 답은 그후로 한참을 지나서야 철 들며 얻은, '진리'와 맞먹는 '중학생의 결론'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한 그때가 국민학교 2,3학년 때쯤이었나 보다)


학교 교사를 하면서 무려 3년 동안 내리 담임을 안했다.
올해 학급을 맡고, 신학기 3월 답게 막 개별 상담을 시작하면서 그 3년이 무척이나 길고 힘든 날들이었음을 확인했다.  똑같은 듯 하나하나 모두 다른 그놈들의 매력을 충만하게 느낀다.

안타까운 것은, 또 다른 이유로 그들 역시 아침 기상이 '꺽쩡스러울' 수가 있다는 것.
나이들면 절로 누구나 알게 되는 아주 사소한 '사실', 마음 먹기에 따라 매일 아침이, 한 달이, 한 해가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찌하면 그들이 매일 아침, 당연한 듯 활짝 웃으며 일어나게 할 수 있을까.


아직 난 멀었다...
퇴근 길에 쏘맥 한 잔 들이키는  이 밤, 또는 이 새벽에 홀로 몇 줄 끄적이며 눈물이 핑~도는 것이, 살짝 먼 옛날 내 어린 시절의 기억 탓이 아니라 지금 마주하는 아이들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이기에 그렇다.

아직은, 그들의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당장 눈 앞'에 말려들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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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5 01:15 2010/03/0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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