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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득함 : 퍼즐 1,000조각의 아우라(aura)



천 개의 조각 퍼즐로 맞추는 그림 한 장의 기억.

클림트의 '물뱀1'을 원본(50x20cm)의 두 배 크기로 출력해서 그 위에 금분, 은분으로 일일이 덧칠해본 적이 있다.
'금물로 한 줄 한 줄 그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클림트의 예술적 성과는 일단 뒤로 하고, 우선 '그 장식적 터치가 작가에게 어떤 맛이었을까' 라는 단순한 궁금함 때문에 기호에 가장 잘 맞는 물뱀1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 덧 그려본 거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감정은 재연될 수 없는 것이어서 시큰둥해진 덧칠은 결국 끝까지 마무리 되진 않았다.

물뱀1(왼쪽), 퍼즐 속에 편집된 스토클레 프리즈(기다림, 생명의 나무, 충만)


얼마전 '조로'(상당히 어른스러운 제자의 별명)로부터 1,000조각 퍼즐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1,000조각으로 된 퍼즐의 조립완성작을 받았다.
 클림트의 스토클레 프리즈(Stoclet Frieze) '생명의 나무'(관련글 보기)를 소재로 한 퍼즐이다. 언젠가 클림트 원화를 보러 다녀왔다는 내 말이 생각나 고른 소재였다는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퍼즐의 속성이다. '일필휘지'와는 정반대의 개념을 갖는 퍼즐은 조립완성 그 자체가 목적이며 매력이다.

'진득함'이다.


'진득함'을 떠올린 바에 내 곁의 구닥다리들을 들춰 본다.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했으며, 버릴 수 없어 아직 함께 하지만, 그 모습은 낡을 대로 낡아 초췌한, 그럼에도 다른 새 것과 바꾸지 못하고 아직 곁에 두고 쓰는 것들.

90, 또는 91년산.


2002년산. 이음매를 꿰매고 칠을 벗기고 덮어 지금까지 건재하지만, 사실 좀 바깥눈이 의식되긴 하는...


어쩌면 매주 '로또'를 긁는, '만원짜리의 100억어치 행복'이라 둘러대는 '주말의 나'와 대비시켜 '오리지날 나'를 아주 명쾌하게 까부수는 현실,
이런 즈음에 1,000조각 퍼즐 맞춤완성작은 단지 인쇄로 모사된 유명작이기 전에, 저 구두와 탁상시계와 드라이어 못지 않은 진득함의 포스를 물씬 풍기고 있는 거다.

그래서 난 조로를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내게 있어 진득함, 아량, 베품, 배려, 인내, 사랑, 따스함 등등 온갖 정겹고 뿌듯한 감정들의 강력한 상징인 이것, 지금은 하늘에 계실 외할머니의 선물, 초임지로 가던 날, 자취살림에 보태라고 손수 무릎으로 감아주신 90년산 실꾸리들.

흰색은 다 썼고, 옥색은 쓸 일이 별로 없어 거의 처음 그대로. (사진 찍으면서 보니 실꾸리의 심으로 쓰인 게 늦둥이 동생의 초등학교 국어 공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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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9 15:43 2010/07/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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