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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종례






1-8반에게,

입학식날, 시청각실에서 처음 만나던 때가 생각납니다.
연단에 올라서서 소개될 내 차례가 오기까지 신입생과 학부모들의 눈을 마주치는 동안 설렘과 다짐이 저절로 가슴에 가득 차오던 그 때가 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집니다. 긴 일년이 지나고 보니 참 빨리도 흘러 갔네요, 그때 그 신입생들이 이제 고2가 되는 날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말이죠.

2008년에 솔내고로 전근해와서 2년 동안 못하고 별렀던 학급담임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많은 약속을 내게 했음에도 지켜낸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학교 일에 치어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할 우리반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음을 이제와서 반성해 보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인 것을... 다 부질없지요.
여러분의 학교생활을 결산해보면서 지각 한 번 체크한 것으로, 조퇴 한 번 체크한 것으로 3년 개근이 사라진 친구들의 원망이 지금 내 눈 앞에서 삿대질하듯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만큼, 야속하고 고지식하고 잔소리 많고 완고한 담임을 아무 탈없이 잘 따라와 줘서 진정 고마워집니다. 차디 찬 잔설이 발끝을 덮어도 말없이 견뎌내며 새봄의 자양분으로 삼는 나무들처럼, 담임이 안겨준 그런 상처가 뒤의 어느날 여러분의 사소한 그 무엇인가에 바람직한 긴장의 요소가 되어준다면 지금 나는 여러분의 원망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주는 것은 포스트잇과 형광펜입니다. 살아가며 수정할 일은 언제나 우리 삶에 담겨져 있고 또 언제든지 우리는 삶의 내용을 덧보탤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노란 포스트잇으로 여러분에게 주고자 하는 나의 마음입니다.

같은 학교 안에 있으니 반드시 다시 볼 수 있을테지만, 당장엔 눈시울이 따스한 것은, 내일 또 보겠지 라며 무심히 맞이했던 그 많은 하루들이 지금에 와선 아쉽기만 한 탓일까요.. 곁에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내 방 가득 우리반 여러분의 얼굴이 하나 둘씩 채워지고 순간순간 멈춰 선 얼굴마다 회한 같은 아쉬움이 솟아오릅니다. 끝까지 이루지 못한 나 자신과의 약속들,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얼굴들... 못난 담임을 믿고 따라와준 우리반의 사랑을, 옆 친구들에게 보여준 발랄한 우정을 나는 반성으로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시끌벅적했던 1-8반 교실은 뜯어진 블라인드를 간직한 채 생생히 살아 있지만 이제 그곳은 우리에겐 더 이상 말이 없습니다.
한 해 동안 뱉어놓은 우리의 숨들을 고이 담고서 다시 돌아올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겠지요. 먼 훗날, 최선을 다함으로써 웃을 수 있는 성숙한 우리들을 말없이 기다려 주는 것, 함께 살아왔던 교실이 주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우리의 2010년은 그랬노라고 마주 앉아 돌이켜 보는 날은 우리가 다시 만남으로 해서 생겨나겠지요. 학교를 떠나 가끔씩 하늘을 우러를 때면 문득 생각이나마 나는 그런 우리이기를, 그리고 2011년엔 서로의 소망을 다함께 이루기를 빕니다.
언제나 서로 사랑하세요!
                                                                                                                                            2011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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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4 16:14 2011/02/0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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