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어설프게 포도주를 담가 먹다가 약품을 쓰지 않고서는 시중의 와인 맛을 내기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난 뒤로
처음부터 소주를 부어 담그는 매실주로 돌아선 게 2010년 일이다, 시간만 지나면 나름의 성취가 있으려니 하면서.
그리고 예전, 한참 오래전에, 지금은 하늘에 먼저 가 있는 여주가 부모님이 12년 전에 담근거라며 가져온 거의 간장 같은
짙은 색과 향의 매실주가 떠오르고 머릿속에 몇년 뒤의 향과 색이 그윽할 그림이 마구 그려졌기 때문에.
그러나,
20리터가 다 들어가는 유리통에 인터넷서 구한 '레시피' 대로 담근 매실주는,
그윽함은 고사하고 제대로 색이 나오기도 전에 바닥내버렸다.
하루하루 꼴짝꼴짝 쬐끔씩 반주 삼았을 뿐인데 두 해도 안돼서 끝이 난 것.
그래서 '올해에는 정말로 색 깊은 매실주를 기다리겠노라'며 지난 번의 그 통에 다시 20리터를 부었다.
이번엔 정말로 한 십년 놔둬 봐야지...
근데, 딱 하루,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색이 달라졌네?
첨엔 흑설탕 한줌 넣은 것 때문인가 했는데, 국물(?)이 아닌 매실 색이 달라지는 거다.
"어라?
요거 담달부터 마셔도 될라나?"
매실을 씻을 때 썼던 고무장갑이 생을 마감할 듯.
베트남 갈 때 샌들 바닥 붙였던 본드 남은 걸로 구멍을 붙여 봤는데, 신통치 않다.
사용하던 물건 바꾸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구멍 난 고무장갑은 어쩔 수가 없다, 버려야지...
근데 요놈,
버리기 전에 뭐라고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