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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 시골집 뒤 논가에서 봄을 보다



 

10여 년 전, 인월에서 근무할 때에는
들꽃에 푹 빠져 살았다.
통근하지 않고 관사에 눌러 산 탓에 방과후의 긴 시간을 보낼 거리가 필요했는데, 보통은 서너 시간 정도는 산에 올라야 볼 수 있는 들꽃들을 발품 몇 분만에 만날 수 있었던 학교 자리 덕분이었다.
산간 분지 마을의, 지금은 사방으로 우회도로가 돌아나면서 섬이 돼버린 살짝 높은 야산에 학교와 관사가 있어서 근처만 뒤지는 것으로도 산중에서나 볼 수 있는 들꽃들을 철따라 볼 수 있었다. 한 거리만 내려가면 되는 동네 하천 '람천' 주변부터 관사 뒤 작은 숲까지 두세 시간을 걸으면 물가, 논둑, 밭길, 야산, 그리고 지리산 중턱쯤에 해당하는 들풀 들꽃들을 웬만큼 다 찾아볼 수 있었던 거다. 인월의 봄은 걸음 한 발 함부로 떼어 딛기 어려울 만큼 눈을 잡는 들꽃들이 깔린 꽃천지였다.
그땐 그들 이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참 좋았고 가끔은 비슷한 것들을 구별하려 나름의 공부를 하기도 했다. 수술이 어떻고 암술 머리가 어떻고 잎이 줄기가 어쩌고 저쩌고.. 시키지 않아도 외우며 보고 찍고 즐겼다. 그렇게 서너 해를 들꽃 덕분에 참 즐겁게 살았다. 그 즈음에 한겨울 빼고는 거의 한 주 걸러 한 번씩 지리산에 올랐던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였을 듯하다.


그랬는데,
이젠 그게 다 지난 옛이야기 같다.
처음 이름을 알고 반갑고 좋아서 사진마다 이름을 적어가며 블로그에 올리던 것이 뒤늦게 겸연쩍게 느껴질 정도.
누군들 그 이름을 모를까.. 혹시 몰라도 그래서 궁금했다 해도 도감 수준의 사이트가 널리고 널렸는데 말이다.


그래도, 수 년의 시간이 지나고 들꽃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도,
이 봄 그들이 주는 감동마저 사라진 것은 아닌가 보다.
소양 시골집 뒷문을 열고 넓은 논터를 걷는데 자욱히 깔린 뚝새풀의 초록 속에 흰 별들이 반짝인다. 별꽃보다 더 별 같은 벼룩나물이다. 큰 별들은 봄맞이고 그 곁에 군데군데 꽃마리와 자운영과 금창초가 나와 있다.
봄맞이와 꽃마리를 처음 알았을 때 그 조그만 것이 보여주는 '꽃'모양이 경이로웠다. 우리 손이 기억하는 '꽃'의 전형, 세상 꼬맹이들이 최초로 그리는 '꽃'의 모양이 그것 아닌가,, 동그란 꽃술덩이에 돌려 달린 다섯 장 꽃잎. 겨우 2미리 남짓한 크기로 그 모양을 만들며 줄곳 펴오르는 꽃마리는 언제봐도 참 감탄스럽다.
늦여름 꽃가지가 벌을 대로 벌어 산만해진 어른 말고, 솜털 난 줄기 하나 곧게 올리고 그 끝에 화서 하나 하늘로 올린 애기 뽀리뱅이도 이맘때가 최고다.
때거지가 아닌 유채꽃도 눈부시기는 마찬가지여서 초록 중에 한 눈에 확 든다.




이 조그만 들꽃들은 '식상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꽃의 전형을 하고 있다.





제 알아서 섞여 사는 모양과 색의 다채로움.






덴드롱, 클로로덴드롱, 클레로덴드럼Clerodendrum, 필로덴드론Philodendron, 클레로덴드럼 톰소니에Thomsoniae


그놈 이름 참,,, 여기저기 검색해보니 '클레로덴드럼 톰소니에'가 비교적 정확해 보인다.
외래종은 대체로 이름이 복잡하고 꽃도 소담하지 않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놈은 계속 함께 가야 할 사연이 생겨 버렸다.
화끈하고 길게 피어나는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아끼던 꽃을 분화하여 주신 건데,
소양 시골집에서 일년 내내 푸르고 풍성하게 꽃을 내던 요놈이 아파트로 가져온 뒤로도 왕성한 생육을 보여 해마다 가지를 쳐주고 넝쿨순을 잘라내며 이 크기를 유지해왔고 그 사이 밑둥이 엄지손가락 굵기로 든든히 자라왔는데, 지난해 제 잎을 몽땅 떨구어 냈다. 지난 늦가을 집을 길게 비운 뒤 잎이 시들시들 쳐져 있길래 물을 흠뻑 주고 또 주고, 그랬다가 그 잎들이 죄다 떨어지고 그게 과습으로 뿌리가 썩어서 생기는 현상과 같아 보여 결국 죽이고 마는구나 싶었다.
그랬던 요놈이, 혹시 몰라서 또는 죽인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치우지 않고 있던 요놈이,
이 봄에 새순을 쑥쑥 올리는 거다.
그 반가움이란...

그리고 이렇게 예전의 그 풍성함 그대로 한아름 꽃을 올렸다.

아마도 베란다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낙엽과 새잎의 '보통나무' 삶을 알았나 보다.

당신도 그런가? 어느 순간 카메라가 아닌 휴대전화로 일상을 찍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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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0 10:02 2014/04/2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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