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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났지..? 역시 공짜는 없었다.



출전시간: 7경기 687분 (1위)

슈팅: 89개 (독일100, 브라질93에 이어 3위)

유효슈팅: 44개 (브라질54에 이어 2위)

코너킥: 53개 (1위, 2위 독일은 49개)

숏패스: 2348회 (1위, 2위 터키는 2247, 3위 브라질은 2082)

롱패스: 894회 (독일903에 이어 2위)

파울: 133회 (독일과 공동1위)

피 태클: 155회 (터키와 공동1위)

길거리응원 연인원: 2100만명

눈에 드러난 수치가 이렇다.
4강이 결코 기적이 아니었던 거다.

여기에다,
월드컵 운영의 기초가 되어준 각계 각층의 자원봉사와
안전유지, 청결유지, 경기시설유지 등 우리의 또 다른 노력을 감안하면...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게다가, 선거철이면 전통적으로 있어왔던 북풍이 월드컵 막판에
또 한 차례 스쳐가지 않았는가...
함포실에서 방아쇠에 손을 건 채 숨져간 하사의 죽음이 진정
순수한 애국으로 남게 되기를,
이번 [서해교전]북풍이 그들의 죽음을 담보하고 붉은 하나됨을 짓밟으며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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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월드컵 관련 기사들.
그 중에서도... 이를테면.. 편집후기 같은.. 기사들을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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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명예 국민증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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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코하마(橫濱) 국제종합경기장에 흩뿌려진 270만 마리의 종이학과 함께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21세기 첫 월드컵축구 대회가 막을 내렸다. 양국은 세계 앞에 약속한 공동작업을 훌륭 하게 수행해냄으로써 각자의 국가위상을 높인 것은 물론 한·일 관계에도 새로운 장을 열게 됐다.
NHK방송 해설을 맡았던 오카다 다케시(岡田武史)전 일본축구대표 팀감독은 “당초에는 ‘분산개최’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한·일 이 서로 선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공동개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월드컵 유치전에 먼저 뛰어들었던 일 본으로서는 대회의 반쪽을 한국에 떼어줬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조별리그 3경기 중 미국과의 경 기를 공중파방송이 중계하지 않았다. 한 방송관계자는 “국제축 구연맹(FIFA)과 방송권 계약을 할 당시 공동개최라는 의식이 그 만큼 희박했던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한국으로서도 일본과의 ‘공동개최’보다는 ‘경쟁개최’라 는 의식이 강했다. 일본을 뛰어넘는 대회운영과 경기성적을 내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서울의 길거리 응원부 대 속에서는 일본이 골을 넣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 사실은 일본에도 전해졌다. ‘경쟁심’의 표출은 일 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일본의 성적을 훨씬 추월해 4강까지 진출하자 일부 주간지와 인터넷 매체는 ‘오심 시비’를 부각시 켜 성과를 깎아 내리려 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주류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그보다는 공동개 최국으로서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대회기간 내내 양국에 넘쳐 흘렀다. 한국전이 열리는 날이면 도쿄(東京)의 대표 적 ‘코리아타운’인 쇼쿠안(職安)거리 등에서는 한국인과 일본 인 수 천명이 한데 어우러져 ‘대∼한민국’을 외쳤다. 한국-독 일전이 열리던 날에는 일본 국회의원 13명이 주일한국대사관을 찾 아와 붉은 티셔츠를 입고 함께 응원을 하기도 했다.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팀이 보여준 투혼과 체력에 감동을 받아 응원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8강이 결정된 뒤 아사히(朝日 )신문 여론조사에서 일본인의 60%가 한국을 응원하겠다고 답했다 . 이것이 공동개최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을 거 치면서 많은 일본인, 특히 젊은이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뀐 것이다. 물론 양국 간 오랜 역사의 응어리가 한번의 대회 로 다 풀릴 수는 없겠으나 월드컵이 계기가 된 각종 교류와 접촉 으로 인해 한·일관계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가능성을 보인 것 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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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한·일월드컵은 ‘삼바축구’브라질의 화려한 정상 복귀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국은 대회 개최국으로서, 최대 이변의 주인공으로서, 완벽한 운영으로 2002월드컵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 이 아니다. 물론 FIFA컵만 빼고….
세계인들은 지난 30일 벌어진 브라질과 독일간의 결승 경기로 20 02년 월드컵대회를 평가하고 기억할지도 모른다. ‘호나우두의 브라질이 역시 세계 축구의 최강이었다’고….
그러나 2002한·일월드컵대회의 ‘성공’은 29일 대구월드컵경기 장에서 ‘작은 결승전’으로 치러진 한국과 터키간의 3, 4위전에 함축됐다.
▲월드컵대회의 궁극적 목적은 축구를 통한 ‘세계평화’다 경기가 끝난후 한국과 터키 선수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태극 기와 터키 국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았다. 역대 어느 대회에서 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월드컵무대에 돌풍을 일으켰던 ‘태 극전사’들과 ‘투르크 전사’들이 세계평화의 메신저가 된 것이 다. 3위를 차지한 터키 선수들이 아이들과 함께 시상대에 오른 모습도 ‘어린이와 함께…’라는 2002월드컵대회의 슬로건을 대변 해 주었다. 아마 어느 누구도 이렇게 아름다운 월드컵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한국축구의 희망을 보았다.
이날 한국대표팀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실점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격했다. 브라질 등 세계 최고 이 스타플레이어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던 환상적인 프리킥 골 도 성공시켰고, 슈팅의 대부분은 골마우스로 빨려들었다. 경기 종료 직전에 터진 송종국의 추격골은 태극전사들의 투지를 대변 하는 것이었다. 누구도 한국축구의 4강 신화를 과소평가하지 못할 것 이다.
▲‘4강 신화’는 계속되어져야 한다 혹자는 한국의 ‘월드컵 4위’를 홈어드밴티지로 설명하려 한다.
그들은 “한국의 4강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것 이다”고 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월드컵 1승과 16강의 한계를 뛰어 넘은 한국축구는 절대 멈춰 서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무대 를 휘저었던 태극전사들이 유럽의 무대에서 활동하고, 국내 프로 리그를 통해 또다른 스타를 만들어 내고, 그들을 지켜줄 ‘수호천 황’ 붉은 악마가 있는한 4년, 8년후의 월드컵 결승전도 결코 남 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박광재 기자 kj59@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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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서 다시 봅시다.’
국가대표팀 응원단인 붉은악마가 그동안 국민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카드섹션의 대미를 ‘CU@K리그’로 장식한다. ‘CU@K리그’는 관중석 사정을 감안해 ‘See You at Kleague’(K리그에서 만나자)를 신세대 사이버 언어로 축약해 쓴 것.
붉은악마는 이 카드섹션을 29일 대구에서 열리는 한국의 월드컵 마지막 게임 3·4위전에서 연출한다.
붉은악마가 이 구호를 채택한 이유는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를 프로축구로 접목시키겠다는 것. 한국 대표팀이 준결승전까지 진출하면서 축구에 대한 관심과 호응은 높아졌지만 실제로 이런 열기가 프로축구까지 전달될지는 상당히 미지수다.
붉은악마는 지난 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국내 프로축구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던 것처럼 이번 월드컵이 끝난 후 K리그가 수준 높은 리그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붉은악마는 월드컵 본선 6게임을 통해 센스 있고 감각적인 카드섹션을 연출,응원의 폭발력을 더해왔다.
첫 게임 폴란드전에서 ‘WIN 3:0’이라는 구호의 카드섹션을 시작,미국전 ‘GO!KOR 16’,포르투갈전 ‘대한민국’ 등으로 현란한 응원을 펼쳤다. 압권은 역시 이탈리아전. 지난 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북한에 0-1로 패한 것을 상기시키며 ‘AGAIN 1966’(재현 1966)이라는 카드섹션으로 상대팀을 자극했다. 이탈리아축구협회는 이 카드섹션을 철거해 달라며 FIFA에 강하게 어필하기도 했다.
붉은악마는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PRIDE OF ASIA’(아시아의 자존심)를 내걸며 아시아축구의 맹주를 자처했고 독일과의 4강전에서는 ‘꿈은 이루어진다’를 내걸었지만 0-1로 패배,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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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붉은악마의 태극기를 박물관에서 본다.’
한국의 월드컵 4강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붉은악마의 초대형 태극기가 경복궁 민속박물관에 영구 기증된다.
붉은악마 신인철 회장은 “박물관측의 요청으로 초대형 태극기를 기증하기로 했다”며 “대구에서 열리는 3·4위전을 끝으로 태극기를 박물관측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가로 40m 세로 60m의 초대형 태극기는 지난 4월27일 중국과의 평가전부터 등장해 평가전 4게임,29일 대구에서 열리는 3·4위전까지 월드컵 본선 7게임 등 총 11게임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구 섬유공장에 특수 주문,이음매가 없는 완전한 통천으로 제작된 초대형 태극기는 제작 당시 크기가 너무 커 대구의 비행장 활주로에서 만들어지며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 대표팀의 선전과 함께 애국가 연주와 동시에 마치 초대형 스크린처럼 펼쳐지는 태극기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애국심과 찡한 감정을 전달했다.
특히 외국 취재진의 집중 취재 대상이 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박물관측은 역사적인 쾌거를 이루며 민족의 자존심과 잠재력을 확인시켜준 월드컵의 상징적인 존재로 이 초대형 태극기를 민족의 역사적인 사료로 채택했다.
신인철 회장은 “다음 경기부턴 새로 제작된 태극기로 응원을 할 것”이라며 “이번 월드컵에 등장한 초대형 태극기는 전 세계 언론에 노출되며 한국의 가치를 높인 것은 물론 응원의 큰 기폭제가 되었다. 명예로운 은퇴를 하게 돼 정말 기쁘다”고 밝혔다.
초대형 태극기는 무게가 1톤에 달해 1.5톤짜리 트럭을 동원하고 30여명이 운반을 하는 등 경기장 장소를 옮길 때마다 엄청난 인력과 장비가 동원됐다.
/전용준 toto@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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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 켠에는 (?)에 대한 의구심이 일기도 하지만...
어쩌면 내가 있었을 그 자리에서 대신 죽어간 그들의 명복을 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2/07/01 23:57 2002/07/0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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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1 23:57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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