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의 포켓카메라 agtae.com     

글 카테고리 Category 최근에 올린 글 RecentPost 최근에 달린 댓글 RecentCommant

고추잠자리의 겨울



잠자리 꽁뎅이가 빨개졌다.
지들이야.. 노란 것이 났다 가고 빨간 게 온 것일 테지만
이 시월에, 발바닥 근처에서 "화들짝 놀래는 것" 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이
내게는 붉어져 떨어지는 낙엽같다.

집에서 출제하던 미술시험지에 그림 세 개가 빠졌다.
집에 있던 이미지 파일 중에 적당한 것이 없어서 비워둔 것인데
빈 네모만 인쇄되어 나오는 시험지를 보고는 아차 싶었다.
"까짓거 나중에 원안 고치고 시험시간엔 직접 들어가서
그림을 보여주면 되겠지..." ..라고 굳게 맘먹어 놓고서는
막상 당일 4교시 시험시간엔 아주 의연하게 점심 먹으러 나왔다.
휴대전화가 울린다.
"선생님 지금 어디세요?" 댕문이 전화다.
"이시키가 지금 시험시간에 교실서 왠 전화질이야..".. 하려다가
점잖게 물었다. "왜, 댕문아, 문제가 뭐 이상하냐?"
"선생님 그림이 안보여요.." 그렇게 뒤통수를 맞고서는 헐레벌떡...
헐떡거리며 교실에 들어서서 잽싸게 그림 셋을 그린다.
3학년 애들 반응이 이상하다... "선생님, 그게.. 좀... 그거 맞아요?"
"그래임마, 급히 칠판에 그리느라고 좀 이상한거야.. 됐지? 얼른 풀어!"
"... ... ..." ".... ?..."
... 아차차차차.... 시험지를 다시 보니 그림과 문제의 번호가 따로 논다.

전날은 고3 한문시간에 우왕을 떨었는디...
열심히 내가 출제한 내 문제를 나도 못믿어 시험 당일 아침에 훑어봤더니
11번 문제의 정답이 세 개로 보였다.
급히 시험지 마다 11번 문제 옆에 볼펜으로 적어넣었다.
"알맞은 것을 모두 고르시오."
시험 중반에 고3 학생이 나를 부르러 온다. "11번이 이상해요.."
내 대답: "그니까... 모두 다 고르라고...!"
그애 질문: "아닌데요, 하나 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나: "그러면 하나만 마킹하면 되짐마..!"
보내고 나서 시험지를 다시 봤다. 맞다. 원래의 문항 모습이 맞다.
나 혼자 지랄한 거다.... .

바닥이고 어디고 앉았다 하면 비틀거리는 고추잠자리를
써늘한 바람 맞으면서 바라보다가 문득 올 가을은 공허할 것 같다는,
어쩌면 올 겨울은 힘이 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2/10/09 14:00 2002/10/09 14:00

top

About this post

이 글에는 아직 트랙백이 없고, 댓글 11개가 달려있고
2002/10/09 14:00에 작성된 글입니다.


: [1] : ... [56] : [57] : [58] : [59] : [60] : [61] : [62] : [63] : [64] : ... [81] :

| 태그 Tag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