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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질 무렵 어느 밤




벌써, 4월 9일이다...
한밤중 2시에 산책로를 걷는데.. 네온등 붉은 빛에 잠시 찬란할,
여전히 만개해 있음을 고집하는 저 벚꽃이 동무가 되고,
간간이 지나는 자동차와 요천의 어느 물고기 첨벙 소리와
양림단지 간판등이 죄다 거꾸로 출렁이는 그 검은 요천 건너편에 메아리지는
어느 밤새의 드문 소리가 직직이는 내 신발과 말을 다툰다.



오늘 아침, 그러니까 이젠 '어제 아침'...
김차동 프로의 기상캐스터 귄기현이 제법 익숙한 듯 농을 섞었댔다.
"세상에 못믿을 게 봄날 일기예본데요, 오늘만큼은 믿을만 합니다."
"오후에 비 올 확률 80%예요.."
... 덕분에, 굳게 맘먹어 다시 시작하려고 새로 산 테니스라켓 개시를 못했다.
어제까진 평년보다 이르게 온 따스함이었고
오늘부터 한 사흘간은 기온이 다소 쳐질 거라더니
저녁에 찬 기운이 돌자 금새 코가 찍찍거린다.
알레르기 비염에는 비염약보다 보약이 최고래.. 맞어, 원기회복이 먼저지..
점심 먹을 때 주고받던 말들을 상기하며
수년간 나를 괴롭혀온 비염이 내일 아침에 또 여전할까봐... 맘이 쓰인다.

오후에
전주에 출장을 갔었다.
집으로 바로 퇴근하니 6시반, 하- 시간이 창창.
진공청소기에 막대걸레에 쓰레기봉투에 .. 세탁기 흰 거 한 번 검은 거 한 번..
그 숱한 날들 주말들 죄 날려먹고 겨우 평일에 출장 덕으로 시간을 낼 수 있다니..
어쩌다 인생 이리 됐을꼬...
한밤중까지 치워댄 적 있는 사람은 안다... 이 늦은 출출함.

그래서 겨울외투 꺼내 걸치고 요천 가를 한바퀴 돌아온 거다..
지갑 챙기고 카메라도 챙겼는데.. 포장마차도 찾았는데..
지금 속으로 막 땡기는 "오징어무침"은 안한단다.
다시 시내로 한바퀴 더 돌다가 결국 "콩나물국밥"으로 대체하고
들어온 참이다.

이런 밤 같이 생각이 천리를 달릴 때면 잠깐씩 할머니 생각이 더불어 난다.
할머니와 오랜 세월 보내는 동안
'어차피 세상에 나면 결국 돌아간다.'는 것쯤 다 알아버린 나이여서
'계실 때 더 잘할 걸. 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뵐걸...' ... 이라는 후회가 들기 때문은 아닌데,
내게 할머니는, 곁에 산모습으로나 뵐 수 없는 지금이나 그립기는 매일반이어서
특별히 요즘 더 그리울 것도 아닌데... 잠깐씩 할머니 생각이 나는 것은,
맘 속으로 약속했던,
'새해를 시작할 때 인사를 드리고 와야지..'
'3월이면, 꽃들이 피면 꼭 들러서 인사를 드려야지..'
'동생 전주에 내려와 살게 되면 함께 가서 꼭 인사해야지..'. 라던 것
그 어느 것 하나도 한 게 없다.
할머니 묻힌 고창땅 언저리에 가볼 기회 조차 없었다.
흰눈 같은 밤벚꽃이 가로등빛에 눈까지 부신 이 밤 천변에서
잊혀지는 게 할머니가 아니라
내 속에 있던 일말의 그리움 마저 일상에 깔려버리는 요즈음이 안타까운 거다.

4시가 넘고 눈이 따가운 남원의 어느 한밤이
어쩌면 이렇게 꼬박 새일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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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09 03:45 2003/04/09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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