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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자식들을 중환자 못만들어서 안달나요?"



"엄마는 자식들을 중환자 못만들어서 안달나요?"

경기도 집에 들를 때 행여 눈이라도 움푹 패여 있으면 어김없이 나오는 소리에
쏘아붙이곤 하던 말이다.
'야, 너는 저혈압에 기가 허헌갑다.
이참에 딱 한번만 지을테니 꼭 먹어봐라, 용허댜!'
그렇지 않아도 깊은 내 눈두덩이가 댓시간 운전에 푹 꺼지기는 다반사인데
조금이라도 힘이 빠져뵈면 그 틈을 타고 버릇처럼 챙겨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난 지금도 '엄마'라고 부른다.

언젠가, 전주역까지 기차로 소문없이 자석요를 날라들고 오셨을 때,
'오늘은 어차피 오셨으니 내가 받을 께. 담부턴, 정말로 다시 이러면 그땐
엄마 보는 앞에서 내동댕이 쳐버릴거여..'
'알았다, 알았어.. 이번 한번만... ! 니 아빠도 이거 해드렸는데.. 잘자더라.'

그러고 한해 뒤,
이번엔 '키토산'과 '스쿠알렌'정이 든 박스 두개를 또 꺼내놓고선 싣고 가란다.
'아후- .. 이걸 정말...'
속으로야 그랬지만 결국은 갖은 인상 다 쓰며 받아 왔더랬다.

인월에 와서 1년 반이 지난 지금, 난 참으로 묘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해걸러 들어온 신규 셋이 모두 영어과이면서
이쁘기 그지없으면서 둘도 없는 동료가 돼주는 것.
신규생활을 다시없이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되려 내가 그들에게 배워야 할 정도,
나도 신규 때 그랬었나 싶을 정도인 그들.
사실 그들의 모습이 우리 교사들의 기본임에도 그 이상으로 느껴지는 우리
신규아닌 교사들의 모습이 신규와 대비되는 경험이 묘하다는 거다.
그들 중 내 옆자리의 이쁜이 후배선생은 남한테 싫은소리는 고사하고 센소리 한번 안하는,
아니 못하는, 유난히 표가 나는 천사표 영어선생이다.

그가 오늘 결근을 했다.
내일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되고, 그는 평가계인데, 오늘 안올리가 없는데...
뒤에 알았는데, 부친이 편찮으시단다. 그것도 보통이 아니라 심각하게.
췌장에 이물이, 혹은 암이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했다.
'췌장'이라면... 중년 이상의 남성에겐
병명에 그 말이 끼어있기만 해도 소름돗는 곳이 아니던가...
저녁에 전화를 했더니 저쪽 소리가 없다. 아마도 울고 있겠지...
'오늘 좀 진정하고 내일 병원에 바로 가!
학교일은 다들 알아서 챙길테니 걱정하지 말고..'
교감도 아닌 것이 교감처럼 건넨 말에 그가 대답했다.
'아녜요, 아침에 들렀다 갈거예요, 들렀다 갈 수 있어요. 고사감독표도 못짰는데..'
'그래 알았어. 오늘은 진정하고 푹 자!
내일 맘 단단히 먹고 가야지...'

막걸리집에 와서 동동주 한병 들이키고 있다.
뻔히 주무실 시간인 줄 알지만, 경기도 집에 전화하고 싶다.
동생이 받는다. '왠일이야, 이시간에?'
'어-, 그냥..'

부모는 나를 환자로 만들어가며 앞서서 챙기는데,
쏘아붙이는 자식 눈치보며 조심스럽게 매번 챙기는데,
아들은 제 곁 다른 부모얘기를 들을 때서야 그나마 전화 한통 같잖게 적선한다.
그러다 그렇게 늦어지면 땅을 치며 같잖은 후회라도 하게 될까.

막걸리를 동내고서 나서는 문밖에.. 선뜻 머리 내밀기가 꺼려지는 비.
그새 또 비가 온다.
식어가는 아스팔트에 방금 쏟아붓기 시작했는지.. 길 가장자리 차오르는 빗물 위에
데워진 거품이 눈물처럼 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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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1 00:14 2003/07/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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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1 00:14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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