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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맥으로 날을 새워야 한대도 좋다



TV는 내 친구.
퇴근해서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다음 날 출근하러 나갈 때까지, 14시간 동안
말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내게, 사람소리란 TV와 FM 뿐이다.
습관적으로 BGM 삼아 TV를 켜고, 다큐멘터리와 홈쇼핑을 찾아 헤맨다.
다큐는 '사실'이라는 진지한 낯설음의 충격이 신선하고
홈쇼핑은 '나를 설득하는 호스트'라는 시스템을 타고 시공간을 넘나들게 하는데...
유난히.. '요리'('조리'가 맞나?)와 관련한 방송에 솔깃한 건, .. 나만 그런가...
food mixer '미니파워'가 슬슬 맛이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
오늘 CJ쇼핑의 '파워도깨비방망이' 선전은 매우 고혹적이었다.
E마트에서 그런 부류 장비의 값을 둘러보고난 터라 75,000원이 구미를 확 당기네.
곁에서 보는 사람 아무도 없지만... 전화를 겨우 참았다.
내일 더 찬찬히 둘러보고 와야지.

작년 겨울의 캘리포니아, 올 여름의 유럽.. 보다야는 낫지만,
우리의 올 여름은 참으로 괴팍하다.
언젠가도 했던 생각인데... 이제는 한반도의 계절이 4계가 아니라 2계여야 할 듯.
'雨기'와 '雪기'.
테니스 연습볼 좀 칠라고 한 200여개 담을 만한 노란 이마트바구니 하나
인월 장날에 샀다.... 그런데, .. 일주일이 넘도록 트렁크에 싣고만 다닌다.
멀쩡하다가도 6교시 쯤 부터 내리기 시작하곤 하는 ... 저놈의 비. 저놈의 비.
화가 얼마나 나냐면, .. 죄없는 네트를 확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약이 얼마나 오르냐면, .. 라켓을 그냥 확 뿌솨버리고 싶을 만큼.
놀이를 못하게 된 것만 가지고도 하늘이 야속한데,
올 농사.. 그 사람들은 어떨까... 웬수같을까... 어쩌면 체념했을지도..
가을에 야채와 내년 봄에 쌀값 오른 것 물어줄 일만 남았다.
비에 쫓겨 모처럼 일찍 귀가하니 시간이 남아돌아 그 덕에 발만 호강한다.
푹~ 담갔다 넉넉히 씻고나서는, .. 잊고 있었던 그거..,
언젠가 동생이 주었던 'herbal foot care'를 드디어 발라봤다.
부르자지 폼 같아서 바르는 폼세는 민망하지만... 거.. 시원하니 좋긴 좋네..

밤 열두시. 멋진 말로는 24시.
오늘도 여지없이 비가 내렸기 때문인가.. 북적대던 수퍼 앞 거리가 침침하니 한적하다.
한밤에 목마를 때 깔짝깔짝 마신 맥주가 탈이 되어 위장이 고생했다는, 아니,
지금도 고생하고 있는 박모 형이 그토록 구구절절이 일렀음에도 나는 기어이
캔맥 하나 사들고 천변으로 나섰다.
'윤상 헤어샵'.
이름도 '윤상'이고 위치가 아파트 대문 옆이고 해서 애용 좀 할랬더니
보름이 넘도록 불 켜진 꼴을 못봤다. 오늘도 그랬겠지... 오늘은 열었었을까...
누군가는... 은행나무가 살아있는 화석이랬지...
문득,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발견한 씽크대 뒷벽 그 옛날의 어설픈 라면 가닥에 구물구물 피어있는 곰팡이처럼
지름이 내 한아름인 가로수 은행나무 암놈은 가지마다 청포도같이 은행들을 달았다.
별로 향긋하지도 않은 것이 곧 바로 먹을 수도 없는 것이
내 키를 두 배나 넘는 높이에 주렁거리고 있으니 가히 천년씩을 살 수 밖에.
두르륵 쌩~하고 꼬맹이 세 놈이 스쳐간다.
셋 다 구르면 불 들어오는 바퀴가 달린 킥보드를 탔다.
이놈의 시키들은 잠도 없나? 겨우 꼬맹이들이 감히 이 시커먼 시간에...
아파트 밖을 빙 돌아 중간쯤에 나있는 샛문 앞에 받쳐진 '브로엄'이 멋지다.
신차가 속속 나오는 와중에 가끔은 신차보다 나은 스타일이 오래도록 버틴다.

아찻찻.. 그러고 보니 비가 안오네? 언제부터 그친거여... 그래봤자 날 밝으면
또 내릴거지만, 그래도 반가운 이 비의 소강.
나락 부르트기 전.. 딱 여물을 만큼이라도 머리 벳겨지게 볕 좀 봤으면.. 좋겠다.
열대야에 또 몇차례 캔맥으로 날을 새워야 한대도 좋다,
이제는 땡볕 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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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30 00:35 2003/08/30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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