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의 포켓카메라 agtae.com     

글 카테고리 Category 최근에 올린 글 RecentPost 최근에 달린 댓글 RecentCommant

미쳐서 이길 수 있는 것...



그래... 따지고 보면... 열등감의 연속이었다.

중3때 교복바지 통을 12인치로 늘려 나팔바지를 만들어 입던 것도,
고2때 배꼽까지 올라오는 합섬통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지못할 만큼 머리를 기르던 것도,
고3때 매일같이 데생2 수채화1점씩을 완성했던 것도,
새벽에 이리역 광장을 돌아 4천원 5천원어치 동전을 주워다 라면을 사먹던 것도,
그리고 틈틈이 기어이 100호 정물유화와 전지, 2절지 수채화를 했던 것도,
대1때 30여명의 소묘와 10여명의 수채화 파트를 혼자 맡았던 것도,
대3때 그렇게 평면에 집착했던 것도,
상병때 숱한 밤을 새우며 DMZ공사용 100대 1 모형GP를 만들던 것도,
백운까지 완행버스로 출퇴근하면서도 도도화실에서 대입반을 맡았던 것도,
포토샵2.5부터 컴퓨터를 잡아 지금까지 버티는 것도,
평균 1.2년에 한번씩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갈아치우는 것도,
옷을 살 때 디스플레이된 세트를 전부 사버리는 것도,
한때 미친놈처럼 서점을 뒤지며 CD리뷰를 보고서는 매달 수십개씩 CD를 샀던 것도,
한때는 공부좀 하는 놈처럼 매달 말일마다 한보따리씩 책을 사던 것도,
한때는 매달 월간지 3개씩을 고르느라 다리를 두드리던 기억도,
요즈음 소리바다에서 건진 파일의 용량이 12기가에 이르는 것도,
그리고 오늘, 이글스DVD를 배달받은 것도.. 다 그렇다.
어쩌면 또 한번 미친듯이 DVD를 사잴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무심하면, 죽인다 해도 안그럴 것 처럼 전혀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눈길을 주고 빠지면, 미친놈처럼.. 헤어날 수 없도록 잠겨버리는,
그것이...
그래, 그것이.. 따지고 보니.. 열등감.. 이었거나 열등감에 필적할 만큼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 있었음이었다.

목덜미 시린 초겨울 말라 비틀린 풀잎 사이로 드러난 맨땅에 더 파래지는 입술로
귓가를 쓸고가는 바람을 앙물어본다.
누가 물어오면 당당히 답할 수많은 이유들을 주저리 꿰찼으면서도
자꾸 빈약해지는 두 다리의 여린 흔들림,
출발부터 이면에 '소외'를 내포할 개연성은 '조직'의 생리이고
그 '조직'속에서 잘 살아온 듯 태연했던 나는
활기차서 시끄럽기까지한 수다 중에도 오히려 '왕따'였던 거다.

서가에 꽂혀진 책들의 표지가 낯설고, 또 오디오 전원을 켜본 적은 언제였던가
갖은 화분의 시들고 마른 잎들을 하나 둘 따주며 흐뭇해 하던 기억이 분명 내것이었던가
글 한줄 적어내리며 띄어쓰기로 두줄을 넘게 고민하던 모습도 정말 나였었던가
무심코 가다가 문득 잡히는 무엇인가에 멈춰 서서 끝도 없이 적어대고 찍어대던
달포 전의 나는 어디를 혼자 가버렸을까

그런저런 생각에 속이 분주한 동안 몸 만큼은 게으름을 살찌웠던 걸까...
요며칠 계속 새 양말을 꺼내 신고 있다.
아마도 분명, 이겨내야할 그 무엇이 또 내 속에 자리한 게다.
지금껏 그랬듯이 .. 이번에도 극복이야 될 테지만.. 심상치 않은 건
바람이 매서울 때 가빠지고 쓰린 숨처럼 '내모습'이 아파오는 것.
Creative Commons License
2003/12/18 19:57 2003/12/18 19:57

top

About this post

이 글에는 아직 트랙백이 없고, 댓글 8개가 달려있고
2003/12/18 19:57에 작성된 글입니다.


: [1] : ... [333] : [334] : [335] : [336] : [337] : [338] : [339] : [340] : [341] : ... [668] :

| 태그 Tag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