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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그... 만남의 본선진출



신학기..
직업이 직업인 만큼 설렘과 분주함이 교차하여
가끔씩 우울증을 일으키는 3월...이다.
누가, 어디서 근무하건 똑같을 월급인데... 썩을 놈으 거.. 매번
퇴근이 10시, 11시다.
남들처럼 4시 반에 마무리를 못하는 스스로를 비웃어도 보다가
안쓰러워 동정도 해보다가, 괜히 원망도 해보다가... 결국엔..
'우울증이 이런 것일까..' 싶다.

해마다 적게는 몇십명에서 많게는 몇백명을 만나고 떠나보내는 동안
쌓여진 이름들이 한없으련만 다행히도 IQ는 직업따라 높낮아지는 거라서
이렇게 머릿속에 그려볼 때면 그들이 그많은 아이들이 주욱 되살아난다.

3월.. 아직 중순을 벗어나지 못한 만큼 산재한 일거리들이 나를 부르고
척 맨죠니의 연주와 슈베르트의 미사곡과 정명화의 첼로를 뜬마음으로 듣다가는
'일 중독'을 의심하면서 끝내는 관사를 나서서 교무실로 향하고야 말았는데,
10년전의 중1 꼬맹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벌써 스물셋이라고.. 친구들 댓명이, 제대하고 휴가나오고 등등등.. 한 친구들이 모여서
당시 나와 함께 근무했던 김선생을 우연히 만나 한잔 얻어마시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자기들을 온전히 기억해주는 내가 신통해보였는지 고마웠는지 전화기를 돌려가며
통화를 해댄다.
자껏들... 대장금이나 다 끝나거든 통화할 일이지... 일주일이나 기다린 연속극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졸업 후 아이들은 선생이 자기를 기억해줄지가 가장 걱정인갑다.
연락해오는 놈들(ㄴㅕㄴ들)마다 첫마디가 '저 기억하시겠어요?'다...
천만다행으로 난 아직 발령난지 15년 밖에 안되어 모두 기억이 생생하고
고놈들 웃는 모습과, 웃는 모습 만큼 강렬했던 우는 모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이제 그들과 새로운 만남이 열리는 거다.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제 그들은 추억이 아니라 새로운 또 하나의
학창을 만드는 거다.. 고맙게도 나를 끼워주며.

백운중학교에 첫 발령을 난 뒤 가장 먼저 샀던 게 카메라였다.
지금 기억으로 첫 월급이 39만 얼마..였고 카메라는 58만 얼마..였으니
과감한 결정였던 셈, 당연히 월부 구매였다. "니콘 FM2".
디카는 고사하고 286컴퓨터도 없던 그때... 별 수 없이 필름값이 거의 카메라값이 될 만큼
엄청 찍어댔다. 그 버릇은 지금도 여전하고, 서랍이고 어디고 사진 천지였으니..
첨엔 사진첩, 그 다음엔 밀착인화, 나중엔 그냥 고무줄로 사진다발을 만들어
겉에다 학교하고 연도만 적어 둘 정도.
디카로 바꾼 지금은.. 예상했다시피 집이고 사무실이고 컴퓨터 속에 온통 이미지들 천지다.

학계에 보고도 안된 '규태우울증'이 돋아날 때, 그리고. 오늘처럼 반가운 연락이 닿을 때
한보따리 꺼내 보는 문집과 사진들 속에 문득 주의가 살아나는 얼굴이 하나 둘씩 눈에 띈다.
아련한 추억이지만 반가움 보다 안쓰러움, 또는 작은 회한이 드는 얼굴.. 아이들..
그놈들은 지금 어딨을까..
그때 잘해줄걸.. 그때 더 잘해줄걸.. 다시 만나면 더 해야할 말도 있을 것 같은데..

내일, 날이 밝고, 교실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 싶게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가버릴테지만
지금 만큼은, 그리고 마음 만큼은 작년에 5년전에 10년전에 찍어둔 사진한테 혼나는
내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 나르고 싶다.

"상현아, 니들 나온 사진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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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7 01:38 2004/03/17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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