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의 포켓카메라 agtae.com     

글 카테고리 Category 최근에 올린 글 RecentPost 최근에 달린 댓글 RecentCommant

너는 누구냐, 지금 뭣허고 있냐...




강성원 (대학생, JTS자원봉사원)
원정진 (카탁무용가, 타블로연주가)
----------------------- KBS 월드넷 4월18일 최종회

주명덕 (사진작가)
----------------------- 월간미술 98년10월,05년5월호

김점선 (화가)
----------------------- KBS TV문화지대 5월2일

두정희 (소아물리치료사)
----------------------- EBS 일과 사람들 5월5일

요즘, 한없이 크게 보이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나를 무척이나 작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전북대 앞(그러니까.. 지금은 구정문 앞)에,
상가의 반을 복사집이 차지하고 서점도 있었던 시절에,
떠블포장마차 대학가, 부곡식당, 궁성다방, 토요일다방, 엄지분식,
그레트 헨, 원두막, 느티다방, 학사주점, 디딤돌, 우리는,
미담, 도도화실, 정문슈퍼, 비의 소리처럼, ... 등이 상호의 전부였다.
아니, 다른 게 더 있었는데 내눈엔 들어오지 않았을 테지.
산디과가 공대에 만들어지기 전까진
여자는 원대에, 북대엔 남자만(또는 남자같은 여자 포함) 있다 그랬던 시절에..



교재(특히 외국원서)값이 비쌌거나
막걸리값을 빼면 나머지돈이 없거나.. 해서 무지 애용했던 복사/제본집들은
저작권 바람 탓인지 아니면 요즘 대학생 주머니가 넉넉해서인지
싸그리 자취를 감추고 서점 두어 곳도 마저 사라졌다.

'여깅-, 라보(라면보통) 둘-' 외치던 노란 뽀글파마 원두막 사장님은
이제 세련된(?) 편의점 사장이 되셨고.
'마담'다운 매력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딸내미가 심장병을 앓는다 했던
두 칸 짜리 포장마차 '대학가' 뚱땡이느림보아줌마.
용석이, 정훈형과 함께 써부의 사나이가 무슨 안주냐며 대두병 쏘주를 물 한 대접에 마시던 곳,
매콤하게 굽볶아내는 꼼장어가 일품이었는데...
(하긴 당시 포장마차는 다 닭발 아니면 피조개 아니면 꼼장어였지...)
거문고 타는 국문학과 따님을 둔, 경상도인가 전남도인가 사투리 쓰는
엄지분식 아줌마, 그집 아들 군대 가 있을 동안 못도 박아주고 형광등도 갈아주고..
대신에.. 라면 시키면 '공기밥에 상추'는 덤.
클래식 음악 흐르던 느티다방.
그 옆 학사주점의 배추꼬랑댕이, 쌩고구마, 배추속깡, 당근..과 찌검장.
짧은 기간 '멘트없는 DJ'했던 궁성과 토요일 다방,
당시 다운타운DJ가 엄청 말장만 했던 걸 생각하면 사실 난
진정한 음악DJ 아니었나 싶다.. 크..
요즘과 유사한 신식분식집 디딤돌(디딤방인가?).
본격 음악다방 우리는.
이브 브린너의 음반을 찾아 헤매던 비의 소리처럼.. 결국 한 곡은 구했다.
세 미녀 자매가 운영하며 테이블 마다 손님용 낙서장을 구비해 놓았던 미담.
나보다 한두 살 위인 맏언니의 매력 땜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졸업 후 오랜 뒤 대학축제 때 만난 그녀는 요가코너를 열고 있었다.
샤리오 걸친 그녀의 요가 !
LP룸이 따로 있지 않아 주인과 격의를 조금만 좁히면 원하는 음반을 직접 골라
틀 수 있는 클래식 찻집 그레트 헨. (졸업 후에 비사벌로 바뀌었다가 이제는 영영 사라진..)
무슨 얘기였더라.. 그 끝에 '너네 임신하면 키보다 배가 더 크겄다'라고 했다가
00이와 00이의 핸드백으로 사정없이 머리통 맞았던 곳...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을 즐겨 들었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도도화실.
병철, 재명, 둘리.. 참말로 사연이 많았다.
막걸리 마시던 중 쫌이라도 세련될라 치면(선배를 모시거나 선배의 부름을 받는)
출발장소를 옮겨 시작했던 정문슈퍼,
양파와 고추장이 있으면 우리는 무엇이든, 언제까지든 마실 수 있었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삼거리 식당.
재명이 기석이 종화 추노 용석 등 우리는 서로 주머니 털어 500원만 되면 삼거리집으로 갔다.
(막걸리 한 상: 1병과 안주반찬 1세트가 500원였거덩)
따라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방과후엔 술을 마셨다...
..가 아니라, 사실 너댓 명이 합쳐도 500원이 안되는 날이 더 많았다.
전주에 시내버스가 첨 생겨 어떻게 타는지도 모르고 덕진서 코아백화점까지 걸어댕겼으니까.
그 삼거리집은 할머니와 며느리 둘이서 건물 귀퉁이 한 평반 쯤에 열어놓은 식당인데
점심밥 말고는 뭐 거의 막걸리만 팔았다.
근데 그집 안주(반찬)가 어찌나 멀겋고 싱겁던지 '대학가'의 뻘건 꼼장어와 비교하면
완전 제사음식 수준이었다.
근데.. 그런데..,
... 이젠 그 제사음식의 진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전엔 참기름과 된장맛인줄 알았던 나물무침 한 입에 이제는 풀냄새만 찾더라 이거다.
살짝 데쳐서 겨우 간만 하고 조물거린 무침이 제대로인 듯 느끼는 눈과 입이라는 거다.

나이 탓인가, 나이 덕인가.
새삼 나이를 들먹이는 건,
명색이 '선생'이고, 다 '큰' 제자를 둘 만큼의 세월을 보내며 그들이 '나로부터의 영향'을
거론하며 마음을 보내올 때, .. 나는,
언젠가 '소개팅'으로 만난 사회선생의 한마디,
"선생님이 그들의 인생에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래라 저래라 하며 함부로 관여하는 것이 두렵지 않으세요? "
.. 그 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정말 나는 그렇게 살았을까
정말 자신해도 될 만한 가르침이었을까
그들이 '나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면
이렇게 작아지는 나는 그들 앞에 무엇인가.
나를 이렇게 작게만 만드는 저들은 얼마나 큰 사람들일까...


한밤의 정점에서
출출한 김에 한 병을 비우러 내려왔다가
전화를 받는다.
[수우]다..
"어쩐일이냐, 이시간에?"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요..'
"뭐하고 있었는데..?"
'체육대회 마친 뒤 한 잔 하고 들어가는 길이예요'
"한 잔 하고 들어가는 것이 이시간이냐, 이렇게 빨리?"
'발을 좀 삐었거든요...'

"..." '...'

'쫌만 드세요!'

언제 한 번 모두 함께 한자리에 모여 질퍽허니 마셔볼 날 오겠지..
Creative Commons License
2005/05/07 00:08 2005/05/07 00:08

top

About this post

이 글에는 아직 트랙백이 없고, 댓글 7개가 달려있고, , , , , 태그가 달려있으며,
2005/05/07 00:08에 작성된 글입니다.


: [1] : ... [264] : [265] : [266] : [267] : [268] : [269] : [270] : [271] : [272] : ... [668] :

| 태그 Tag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