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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에게...



[내가 인월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간 날, 여주는 세상을 떠났다]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애기 이쁜 줄을 어찌 알겠냐마는,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처럼 생긴 꼬마가
왼손으로 그려내는 만화같은 풍경화를 보았다.
꼬마 못지않게 이쁜 8절 풍경화를 침이 마르도록 추켜세웠고
그때문이었는지 꼬마는 한살 두살 나이를 얹어
컴퓨터 애니메이션과에 진학을 했다.

중2 때 처음 만난 너, 여주였단다.

상고 컴퓨터그래픽과에서 매번 경합을 벌이던 라이벌에의 질투
그로 인해 더 빨리 자랄 수 있었던 네 일러스트, 그러더니 결국
부모를 졸라서 '요세미티G3'를 사더구나.
당시 사업이 흔들렸던 아버지께 그렇게 조르는 것이 할짓이냐고,
아버지 사업이 얼만큼 위태롭고 어찌해야 회복되는지도 모르는 게 아들이냐고,
참 많이도 너를 혼냈다.

여자친구 없이는 단 하루도 못살것 같다고, 그런데도
여자가 다가오면 도망가게 되더라고,
가끔은 만취하여 나한테 와서 주정도 했었다.
어느 날엔 새벽에 찾아와
"이대로 집에 못가겠으니 엄마한테 초저녁부터 선생님과 있었다고,
재워서 내일 보내겠다고 좀 해주세요"라던 네 얼굴 보며
엄마한테 거짓말도 했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우리 서로
얘기는 끝이 없고 종래엔 만취해버릴 수 밖에 없는 날이었지.
종알종알 미주알고주알... 주제넘게, 자식 키우는 재미가 이런 건 갑다..싶었다.
또 언젠가는 느닷없이 꺼낸 담배를 피워 물며
이르지 말아 달라고, 곧 끊겠다고 사정한 적도 있다.

그런 네가 곱상한 머리를 치고 모자를 눌러 쓴 채 입대한다던 날
나한테까지 그 짧은 머리를 감출거냐고 내가 그랬지,
그날, 거의 밤새 우린 웃었다.. 시각적으로 적응 안되는 너의 그 짧은 머리를 보며
정말 호쾌하게 밤새 웃었다... 넌, 속으로야 입영전야라고 떨리었겠지만.

내가 인월로 전근하고 넌 경기도에 입영했음에도 한 달이 멀다하고 전화를 했었다.
그때 마다 난 또 너를 혼냈다, 그럴 정신 있으면 부모님께도 좀 하라고.
그러면 넌 그랬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화를 잡으면 꼭 두 통화는 하니까,
철들 만큼 철든 아들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리 남일이라지만, 정말 넌 빨리도 제대하더구나, 작년 봄, 꽃피는 춘사월.
훌쩍 커버린 너에게 내가 주는 제대선물은 '삼겹살과 장어구이'였다.
먹고 싶은 거 모두 말하라던 내게 네가 '삼겹살과 장어구이와 소주'라고 했거든.
돌아가며 다 먹고 늦은 밤 인월로 되돌아 오기 전 문득 네 곁모습을 보니
그 숱한 군대제식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오리궁뎅이는 여전하더구나.
그래서 또 한바탕 웃었더랬다.. 기억나지..?
그러다가 사거리 한복판에서 뜬금없이 청해 오는 '포옹'.
그랬다. 넌 내게, 꼬마 때부터 보아 온 아들이자 친구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꼬옥 안아준 네 어깨가 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오늘 이전엔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듬직하던 어깨를 벗어던지고 엄마도 아빠도 버리고 먼저 떠날 줄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었을까..
그 즈음에 엄마를 통해 네 뱃속에서 척추까지 망할 놈의 암덩이가 크고 있음을 알았단다.
차마 너한텐 말 못해도,
그래서 널 볼 때마다 쓸데없는 얘기들만 되뇌이면서도, 한편으로
그런 건 정말 남일이지.. 했다.

올 여름 어느날 . 전화기 건너에서 흘려지는 네 말꼬리에 체념이 묻어있는 걸 느꼈다.
그때 네게 물었지.. "니 몰골이 어떠냐.."
"다 그렇죠 뭐... 아직은 사람 같아요.."
그게... 얼마나 나를 울리는 말이었는지 너는 알았냐..?

못된 게 일상이라고, 정말이지 정말 못된 게 일상이라고,
한시가 아까웠을 너하고 두 달이 더 지나서야, 찬바람 이는 늦가을에서야
긴 통화를 나눴다.

진통제를 삼키며 가뿐 호흡 중간중간에 말문을 여는 너와
뜨거워진 눈시울을 들키지 않으려고 중간중간 호흡을 끊어야 했던 나의 통화는
그렇게 선문답으로 한 시간을 넘겼다...

"이젠 쉬고 싶어요.. 그곳 공기가 맑다는데, 거기서 생식하며, 선생님 가까운 곳에서
그림도 더 배우며... 편안히 지내고 싶네요.."

"그래그래.. 그래... 한번 알아보마. 산중턱, 맑은 소나무 호흡할 수 있는 곳..
내.. 한번 알아보마..."

그러고는 네가 매스컴에 뜨더구나.. , 나쁜놈들..,
소대장, 나, 그리고 더 나쁜놈, 너, 여주..
군에서 한달도 거르지 않고 통화했으면서 어쩌면 그리 아프단 말 한마디 안했냐...
제대기념으로 장어에 쏘주라니...
어쩌면 내게 그럴 수 있냐 임마, 간암말기한테 쏘주라니...

네 엄마는 식음을 전폐하신다.. 오죽.. 안그러랴..
수술 전 찍은 네 증명사진만 움켜쥔 채 울고 또 울고... 나도 네 사진 뺏어 안고
분함에 떨며 울었다.
네 발 한번 닦아주지 못하고 널 보내야 하는 나한테 분해서,
우리 여주한테 너무 죄스러워서,
네 사진 엄마한테 뺏어 안고 쓰다듬으며 가슴을 친다... 여주야..
우린 그동안 무슨 할말이 그리 많아 볼 때마다 사진 한장 함께 찍지 못했을까...
이제 네가 보고 싶을 때면 난.. 무엇을 봐야 한다냐...
네가 눈감은 순간에도,
너를 마지막 태워 보내는 시간에도 난 네곁에 없다..
유난한 흰눈이 얄밉도록 쏟아지던 올 12월 검은 하늘이 오늘 그토록 퍼렇게 맑았던 것은
너를 태우고 날려 보내는 길에 먼지 한 점 걸리지 않고 휑하니 가버릴 작정이었던 것이냐...
네가 고통으로 상접한 피골을 남김없이 불살라 그 퍼런 하늘에 날려질 때에
난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을 보고있어야 했다.
아이들과 롤러코스트에 환호를 하고 틈틈이 하늘에 대고 눈시울을 붉혀야 했던 나를
여주 너는 용서할 수 있겠냐...

여주야.. 이 나쁜놈아...



이제 이노래는 우리가 함께 부른 이세상 마지막 노래가 돼버렸다..


[여주의 컴에 있던 사진들, 그리고 마지막 모습]



* 여주 사진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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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0 00:23 2005/12/20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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