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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 길어진 휴일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방

내방 앞은 저쪽 삼천천 건너까지 막힘이 없어 하늘이 통째로 뵌다.
일찍 일어나기로 새로이 맘먹은 탓에 새벽이 오기 전에 자리에 누우면
창 격자 사이로 밝은 밤하늘이 새어들고 요즘같이 맑은 날엔 잠못들게 달이 밝다.
보름 언저리인가...
마치 아침잠을 끊으며 떠오르던 해처럼 눈이 부신 저 달은 약속한듯
그 격자 그 자리에 겹쳐 내게로 오고 난 누워서 천리를 다녀온다.

이제는 전임지가 돼버린 남중에서 느낀 변화의 바람... 조금은 쳇바퀴 같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그래서 오히려 여유로운 요 며칠... 커피잔을 들고 빈 시간을 서성이며 보내는 것이 얼마만인지...
학급 아이들의 분위기에 신경쓰이는 스트레스가 이렇게 반가운 것을.
지금 난 겉보기에 남이 되었다.

예전의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을 쳇바퀴의 편안함.
휴대폰 알람을 매일 맞추며, 시계에 맞춰 타이를 매는 부산함이 싫지 않고,
사무실 책상위의 컴을 켜고 주간계획을 띄우고서는 하나씩 챙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뒤돌아 서서 히히덕거릴 거면서 앞에서는 짐짓 숙연하게 카리스마를 훔쳐내려는 내 모습도 싫지 않다.
이제는 날잡아 이 아파트만 한바탕 뒤집으면 된다.
베란다 화분도 뒤집고, 욕실에 밀린 빨래감도 뒤집고,
현관을 들어설 때마다 무심히 들고와서 쌓아둔 식탁 위의 전단지들도 뒤집고,
뒷 베란다와 이방 저방에 늘어진 휴지통도, 냉장고도... .

이제 그럴 만큼의 여유만 찾으면 되는 거다.

. . . . . . . . . . . . . . . . . . . . . . . .



일요일인데도 8시에 눈을 떴다.
야행성<동물>에서 슬슬 사람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휴일 하루가 이렇게 길 줄이야.

어제 계획으로는 오늘 하루 집안을 온통 뒤집을 참이었지만 그냥 한주만 더 이 난장판을 견뎌보기로 했다. 내 짧은 머리를 날리는 바람이 모처럼 쌀쌀하지 않고 따뜻한 이런 날엔 좀 걸어야 한다는 이유가 생겼으므로...
서곡을 한바퀴 돌았다. 검은 잠바때기와 골덴바지는 나밖에 없군.

지난 겨울.. 이젠 숫제 지난 겨울이란다. 겨우내 베란다에서 잎이 살짝 얼었던 안스륨을 들여놨더니 피가 안통하는 잎들이 말라버렸다. 잎정리하고 뿌리를 다듬으며 문득 나와 함께 사는 것들을 정리해보니...
어쩌면 그리 한결 같이 다습하게 키워야하는 것들 뿐일까... 나조차도 못견뎌 가습기를 트는 이 방안에서 기를 참이면 건조해도 좋아하는 것들이면 좀 나으련만. 근데 그 자태가 다습하고 반그늘에 사는 것들이 취향에 더 맞는다.
이번 기회에 아예 화분 뒷벽에 비닐을 걸고 물을 뿌리며 살까...
작년 언젠가 익산 조카네집 뜰에 키가 넘게 자라있던 천리향 가지 하나를 꺾어 내방에다 꽂아놓고 뿌리가 내리기를 학수고대하던 화분에 올봄 드디어 옅푸른 잎이 만발해졌다.
여름엔 그 진한 <천리향>을 이젠 내 방안에서도 마실 수 있으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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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19 00:33 2001/03/1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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