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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호에서




방을 뒤집고 베란다에 수댓물을 부었다.
저 살살 문지르는 바람이 일요일 오후 나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수전 물을 모처럼 화분에 뿌렸다. 노래진 잎들도 따냈다. 그러면서 함께 쓸리워져 나간 해묵은 몸냄새로하여 오늘은 여느때보다 청결한 마음이 된다.
뒤엎은 방은 아직 널부러진 잡동사니가 이삿집 같지만 그 덕에 그 틈바구니에서 잊었던 쪽지를 얻었다. 언젠가 생각지도 않던 금강호를 탔던 때 잠이 오지 않아 필리핀 여승무원의 영어서빙을 받으며 겨우 구해서 취중에 몇자 적어 둔 쪽지 두 장. 끝줄로 가면서 늘어지는 글씨에 그날 마신 독주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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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흙같은.."은 거짓말이었다.
다 보인다. 저 검게 짙푸른 물.
배 불빛에 더 희어지는 포말엔 영락없이 그랬다.
간간이 떠 있는 저 장전항의 불빛들이 군사력이면 어떠냐.
이밤 아련한 향수의 표적인 것을.

참으로 질게 온다, 이 비는.
와락 치밀어 내뱉는 것도 아닌 것이 질기게도 온다.
여기서는 가뭄끝의 단비라고.
좋다. 밍숭하니 작렬하는 햇볕 아래 덩그마니 놓여진게 아니라 천지가 하나이고 나도 그 안에 젖어드는 이 날씨.
사소하니 미끄러진 발 끝 하나로 저 위 끝에 닿지 못할 것만 아니면,
소중하고 대단하기 그지없던 "나"조차 비로 녹아 내리니.

외금강 깎아지른 벼랑을
말로 못할 나무들이 붙어섬겨 만들어 놓은 절경에
온통 휘감는 이 비구름이 겹은 더 해
뵈는 게 다는 아님을 알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난 충만하다.
섬진강을 되엎어 놓은 듯 무시무시한 물 계곡
아니, 섬진강을 뒤엎어 놓아도 다 추스릴 저 계곡.

조금은 잔혹한 저들의 규칙들이
남쪽에 익어있어 조금은 불편한 저들의 요구가
너무도 솔직한 외경으로 다가오는 지금
난 캔맥주 하나 한다.

와보니 3박4일이라네. 2박3일인줄 알았더만.

왜 우린 협박하지 못했을까
왜 우린 그 떼 써가며 금강산에 오는 걸까
한없이 비감되는 말 마디.
"돈에는 애국도 민족도 없다- 현대"
"그들은 한편 정말 똑똑했다- 북한"

나 국민학교 시절 촬영세트 같은 건물에, 간판에, 차림새까지...
그러나
어쩌면 그렇게 군더더기가 없을 수가

내가 왜 이 비 맞으며 오르는가..
풀도 나무도 똑 같은데...
금강산이니까.

버스는 너무 많이 오르는 것 같다, 졸을 정도로... 30분이 넘게 오른다.
2000. 8. 2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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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26 01:10 2001/03/26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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