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의 포켓카메라 agtae.com     

글 카테고리 Category 최근에 올린 글 RecentPost 최근에 달린 댓글 RecentCommant

소년은...



E마트에서...

베란다 풀이 말라 비실거리길래
볕을 가려줄 요량으로 대발을 사러 E마트에 갔었다.

소년은
열서너살
키 150 이쪽저쪽
약간 마른 듯 홀쭉한데 통통한...
아무렇게나 헐렁하게 걸쳐입은 목티와 반바지에 샌들
나이에 걸맞게 당연히 잡티 하나 없는 맑은 살빛
스스럼 없이 그야말로 까맣게 말똥거리는 눈빛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 외에는 일체에 무심한 열중.

내 눈은 편집증적 유괴범의 그것처럼 독하게 소년의 뒷덜미를 꿰뚫고 있다.
그에게 나는 그의 주변의 다른 것들처럼 한낱 배경에 불과하듯
그 역시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고 telepathy도 없이
각자 자기 자리 하나 차고 있으면서 그는 스크린의 동영상처럼
내 눈길에 아무런 걸림없이 알아서 움직이고
단지 나만 TV 앞에서 처럼 뚫어지게 그를 보고 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왁자지껄 화면 안을 분주히 스쳐가도
무비카메라처럼 촛점은 계속 소년에게 맞춰지고.

지금 나는 당장의 "14살 소년"을 보는 것이지만
저렇게 키우기 까지 들인 엄청난 시간의 더미들이 그 몸짓 하나하나에 깃들여져 이뤄낸 형체려니.

잠깐 고르던 대발을 집어들고서는 문득 놓친 촛점에 놀라 다시 휘둥거리며 눈길은 소년을 좇아 꽂는다.

이런 감각 또는 기억은 참으로 오랜만에 몰입되는 것이어서
우뚝 서서 소년을 바라보며 머리는 따로 지난날의 같았던 기억을 찾아내려 단숨에 그 시절의 나로부터 훑어내린다.


집에 와서...

"식스센스"의 그 아이가 "AI"에 또 나온단다. 식스센스 상영 내내 줄거리가 아닌 그 꼬마의 연기에 눈을 쳐박고 보았었는데...
오늘 하재봉의 씨네마월드에 잠깐 비친 꼬마의 "AI"촬영 중 인터뷰 장면을 보며 나는 또 얼어붙었다. "고놈 참, 말도 잘하지..."

전율해본 적이 있는가...
열등감과 자격지심과 부러움과 질투가 동시에 치밀어 얼어 붙은 채 대상에 내가 못박히던 기억.
발음 하나 새지 않고 유창하게 재잘거리던 뽀얗고 당당한 서울아이 앞에서
시커먼 내 얼굴과 장딴지가 어른거려 말소리가 목안으로 기어들고 자꾸만 발밑을 두리번 거리던 이 촌놈의 자격지심...

해맑은 소년.
그 앞에서 그 때를 상기한다.

난 지금 38에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살고 있는가.
더도 말고 딱 한 해 뒤에
오늘이 부끄러워 지는 건 아닐까...
자꾸만 나를 연출하고 싶어지는 지금 이 마음도,
그렇게 열심으로 연출해서 나온 내 모습마저도
혹시 내일이면 후회하게 될 것은 아닐까.
Creative Commons License
2001/08/19 01:15 2001/08/19 01:15

top

About this post

이 글에는 아직 트랙백이 없고, 아직 댓글이 없고
2001/08/19 01:15에 작성된 글입니다.


: [1] : ... [51] : [52] : [53] : [54] : [55] : [56] : [57] : [58] : [59] : ... [60] :

| 태그 Tag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