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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훤한 초여름 교정




밤이 훤하다.
배경과 주인공의 속성차가 클수록 명시성이 커지지만 실제 그렇지 않은 여러 가변적 이유 탓으로 유사한 배색이 집중력을 유발하기때문에 더 전달이 좋을 수 있다.
어쨌거나 홀로 서서 텅빈 교정의 달밤을 마주 하는 것은 참으로 쓸쓸한 일이다.
게다가 갓 들어간 유월에 전혀 걸맞지 않은 싸늘한 밤바람님 살짝 불어 주시면 쓸쓸~함은 금상첨화가 된다.

스며든 달빛에 희석된 어둠 속, 어렴풋이 뵈는 세상은 밝은 대낮 보다 더 뚜렷한 집중력을 준다.

보름달, 아니 보름이 사흘 남아 왼쪽이 살짝 모자란 달,
그래도 조각구름의 유영이 손에 잡힐 듯 뚜렷한... 저 밝은 달.

요즘, 내 속에 내가 없고 학교에도 내가 없고, 아직은 밝아 훤한 밤 교정에도 내가 없다.

공립학교 6년차!
올해 남은 몇 달을 보낸 뒤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고, 떠나는 발길 뒤로 남겨질 발자국이 무성한 소문으로 휘청거릴 '말년'.  몸 사려 피해야 할 '떨어지는 낙엽'이 군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방과후 방에 널어지듯 누워 음반의 마지막 줄 헛도는 바늘소리 툭툭 들으며 깜박 졸던,
주문 배달된 책의 첫장을 넘긴 속표지에 날짜와 이름 쓰며 뿌듯해 하던,
한 순간 놓칠세라 매우 눌러대던 셔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아이들 일일이 다듬어 보던,
포트의 물이 끓으면 뚜껑 내린 머그에 커피믹스 털어 넣고 물 부어 저으며 잔 감싸쥔 채 창가에 서곤 하던,
그러던 '나'의 실종.

밤바람 불어야만 밤이 싸늘해지는 건 아닌갑다.
넓은 교정에 텅빈 운동장이 훤한 달빛이 내려야만 보이는 건 아닌가 보다.

내일, 아침이면 또 나가 서야 할 줄 알면서도 이밤 깊숙히 한치 세 마리와 술병들, 그리고 메모지 몇 장에 파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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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2 23:03 2007/06/02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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