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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바라, 또는 풀잠자리 알







올해는 뭔가 다를 것 같은 느낌.
여느 해라도 이전과 같을 수는 없지만 특별히 올해는 좀 더 다르지 않을까 싶다.

우연...은 아니고 자못 사소한 이유로 들러 본 '미래철학'집에서 내게 들려 준 말도 있고,
'돼지'(올해)와 '용'(나)의 궁합이 매우 부실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알다'라는 표현을 쓰기가 좀 뭣할 만큼 객관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내용이지만 구전으로는 제법 일반화 되어 있었다),
종종, 그러나 올해엔 유난히 많이 입소문을 타는 '우담바라'를 교정(校庭)에서 만났다는 이유에서다.
'우담바라'로 검색한 내용이 페이지가 넘어 갈 만큼 많은 얘기들을 달고 있는 것이 종교적 의미를 통한 경외심이든 생물학적 형태에 대한 호기심이든 간에, 우담바라가 주변에 흔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것을 봤다는 말이 올해엔 부쩍 많고 내 앞에도 나타난 것이다.

전설은 보이는 것인가...?
추상명사의 대표주자 '마음'의 실체가 핀셋으로 집어질 듯 구체적인 물리적 현상임이(?) 속속 드러나는 시점에 삶의 한창 때를 보내고 있는 우리는, 전설을 본 적 있는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이미 알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낼 수 없는 나는 별 수 없는 시각적 동물.
나, 또는 나와 같은 속성을 지닌 당신은 전설을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래서 전설은 '전설傳說'인 거다.
우담바라를 본 적 있는가... 당연히 없다.
3천년 만에 핀다는 우담바라가 겨우 백년 정년인 우리 삶에 쉽게 나타날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담바라에 거는 기대가 절실한 탓인지, 사진의 이것이 우담바라임를 주장하는 몇몇 사례가 있다.
물론 대중매체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인데, 그들은 왜 우담바라이길 바라는 것일까.
3천년에 한 번씩 피는 것이 우담바라라면, 실제 그것이 피어도 우담바라임을 몰라야 정상 아닌가?
손가락에 피었다고 손가락 마디 깡통장갑 낀 승려, 아파트 창에 피었다고... 또 어디어디에 피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3천년 만에 핀다는 꽃의 형태를 백년 삶의 우리가 알턱이 없는데도 발견되는 족족 '우담바라'로 정의하며 신비화 영험화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것이 풀잠자리 알이니 그냥 넘어가자 라고 굳이 뻣뻣하게 막아서는 것도 좋아보이진 않는다. 흔히 볼 수 없는 개체가 눈에 들고 그 모습 또한 나름의 귀함이 있다면 그것에서 종교적 의미를 찾음직도 하지 않은가.

사실 나는 이것을 '풀잠자리 알'로 인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아닌 실물로는 처음 보는 만큼 약간의 경외심을(따지고 보면 자연의 그 어느 것 하나도 경외스럽지 않은 건 없지만) 느꼈다. 그러면서 은근히 '우담바라'의 영험함이 기대되기도 했다. '본질'은 스스로 그대로 있는데 천변만화하는 것은 바라보는 내 마음이다. (어떤 이는 이심전심을 유발한 염화미소拈華微笑;염화시중拈華示衆의 그 꽃이 연꽃이 아닌 우담바라였다고도 한다. 사진 속의 이것이 우담바라라면 이걸 들고 염화시중이 가능했을까... 어쨌거나..)
내 모습이 풀잠자리 알을 앞에 모시고 기도 올리는 형국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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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4 00:01 2007/06/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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