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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빨강






" 아니~  왜 그렇게 시뻘건 꽃만 좋아하세요?

  꽃이 좋으면 꽃나무도 좋아하셔야지...
  어떻게 맨날 빨간 꽃핀 걸 가져다만 놓고, 꽃 지면 나몰라라 하시는지...

  화분 정리도 좀 하세욧 !! "


마흔 넘은 아들이 예순일곱의 어머니한테 하는 소리가 저렇다......

내 기억이 맞다면, 40의 젊은 시절부터 유난히 빨강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어머니의 옷들은(허드레가 아닌 나름의 외출복 임무를 갖는 옷들은) 죄다 붉거나 빨갛거나 분홍빛이다.
아들이 전공을 살려 '고상'한 옷을 권해 드리면 여지없이 돌아오는 답은 '노색이잖냐..'였다.

2000년대에 70을 바라보는 시골 아줌마에게 있어서의 '빨강'은 단지 그냥 기호색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KBS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의 윤교수 부인 안혜경 여사 김자옥과 같은 '내조'의 삶이 아니라, 누가 가장이랄 것도 없이 일터에 함께 나가 온종일 볕과 싸워야 하는 농촌 아줌마의 삶에서는 스스로 멋부리고 꾸민다는 게 참 사치스러운 일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어울리든 아니든 모양새 관리의 편의상 할 수 밖에 없는 국민파마 '뽀글이'는 되도록 오랫동안 풀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필수 미덕이고, 머리에 째를 부려봤자 그 뽀글이 안에서 가능한 만큼이 전부다. 어쩌다 시장의 소비자가 되러 나가는 모처럼의 외출은 그동안 못입던 치마를 입어보는 기회다. 치마를 입었으니 몸매나 다리와는 상관없이 삐딱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모시고 나서서는, 마침내는 차림새와는 전혀 걸맞지 않게 안쓰러울 만큼의 짐들을 보따리보따리 싸들고 돌아온다. 처음 나설 때 나름대로 '신경'썼던 패션의 당당함과 뿌듯함은 시장 안에 줄줄이 걸려있는 빨간 자켓과 날 선 검은 바지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소매며 가슴에 멋진 꽃문양이 드리워져 있던 한벌 투피스만 눈 앞에 맴돈다. '고상한 배색'이나 '품격' 따위는 눈에 확 띄던 그 빨간 '마이' 앞에서는 암것도 아니다. 설거지나 김매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겉에 두르기엔 빨강이 최고다. 거울 앞에서도 얼굴과 옷이 함께 보이는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입고 있는 빨간 그 옷이 이 얼마나 멋지고 예쁜가 !

부모님 계신 소양집에서는 이제 직업 삼은 농사는 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 식구 입에 필요한 야채 정도만 뿌리고 거둔다. 다시 말하면 부모님에게 여가란 것이 생긴 거다. 얼굴색이 희어진 어머니에게 '헤어스타일'이 생겼고 가사 중에도 차림에 신경쓰는 '가꿈'이 생겼고 장보기로만 외출을 채우지는 않는다. 차츰 '눈에 확 띄는 예쁜 것'에 대한 미련이 줄고 점점 내실(?)있는 매무새에 여력을 투자한다.
그런데, 애당초 화초를 좋아하시던 분이기는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꽃들을 들여온다. 그것도 십중 구는 빨간 꽃이다. 지금이야 때가 따뜻하니 마당에 내놓거나 옮겨 심지만 겨울에는 내내 그것들이 거실의 반을 차지하고 살았다. 하나가 질 때 되면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꿋꿋이 버티는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과의 충돌이 만만치 않다.

꽃도 좋지만 그 꽃이 진 다음 남아있는 줄기와 잎은 도대체 암것도 아니란 말인가.. 라는 생각에, 그리고 이미 집안에 들어와 있는 것들을 좀 정리해야 되지 않냐는 생각에 내뱉듯이 푸념을 쏟아놓았다. 참 야속한 아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 눈에도 집안의 빨간 꽃들이 강렬하게 꽉 채워 들어온다는 사실!
적응인가, 동화인가, 아니면 그럴 나이가 되어 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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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2 21:20 2007/07/1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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