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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에서 : 발목이 보여준 시간들



"요번에는 꽁댕이 갖꼬 왔어- "
- 꽁댕이요..?
"꽁다리 있자너, 상춧대..."
- 그것도 먹어요?
"암- ! 상추 때가 다 지났응게 그거라도 따서 주믄 조아라 혀. 한 근에 사백오십원썩 받었어..."
(사천인지 사백인지 기억이 분명친 않지만, 한 근이 대략 한 뭉치일테니 사천일리는 없다.)
- 그거, 쓰잔어~ 할머니.
"쫌 쌉쌀허지, 먹을 만 혀, 긍게 갖꼬가지"
- 암튼, 잘 허셨네... 그렇게라도 나가서!
"긍게로..."



인월장에 나온 할머니치고는 상당히 고운 칠순 중반쯤의 할머니가 다리가 불편한 듯 침낭 같은 온찜찔주머니에 다리를 집어 넣고 앉아서 한의원 사무장 청년과 청하지도 않은 문답을 혼잣말처럼 주고 받는다. 스스로 가져온 물건으로 돈을 만들고 장날 오늘 하루값은 했으니 이렇게 다리뻗고 찜질하는 마음이 당당하여 뿌듯한 것이겠다.
스물 예닐곱 돼 보이는 사무장은 새 손님 챠트를 찾는 와중에도 친절한 목소리로 표정까지 정답게 꼬박꼬박 대꾸하고 있다.

-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 따님이 참 크네요, ... 근데 왜, 어디가 안좋아요?
- 아주머니는 안오셨어요? 두어 번 더 오셨어야 하는데.
"일도 바쁘고, ...괜찮은가 보더라구요.."
- 그렇다니까요, 좀 낫다 싶으면 안와요. 못견딜만 해야 다시 오죠. 다들 그래요 하하..
- 근데 아들도 크네요? 딸도 키가 크도만...
"얘가 200은 넘어야 할텐데..."
- 아유, 그 정도면 징그럽잖아요...
"배구 하거든요..."
- 그래요?  너, 저기 올라가봐... 몸무게 좀 보자.. 맨 아래 뭐라고 나오냐..?
- 얘... 저 체중인데요?
"한창 크느라 그런가봐요...하하"

딸이 키가 크고 아들이 배구한다면.... 아! 유진이네구나, 유진이와 수웅이!
'수웅이냐?'하고 싶지만 나설 수가 없다.  족욕중이다.


토요일 오후 세시 반.
"지금 진료받을 수 있나요?"
- 어디신데요?
"인월인데요, 몇시까지 하시나 알아보는 중입니다."
- 지금 바로 오세요. 그럼 진료받으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하며 들어서니 개인적인 통념과는 달리(접수처의 여간호사 등) 남정네 둘이 맞는다.
- 아까 전화하신 분이시죠?
= 저기.. 전에 언제 한번 오셨었죠?
"네. 안녕하셨어요?"
= 미술선생님?
그이가 날 안다.
예전에 견통으로 들른 적이 있는 한의원이다. 그때, 그나 나나 처음(?) 시도한 침술이 있었다.
= 침을 잘 맞으시네요. 목 뒤, 연수에 좀 더 가까운 곳에 대침 한번 시도해보죠!
= 먹먹하다, 아프다, 쇼크 온다 등등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말씀하셔야 됩니다.
"예! 해봅시다. 내 몸에 쇼크 오는 건 누구보다 민감하게 잘 아니까 신호를 보내지요.."
혈압 급강하 쇼크를 두어 번 겪은 터라 그렇게 말했는데...
침을 꽂은지 1분도 안되어 쇼크를 느낀 내 청원에 곧바로 침을 뽑고 끝난 실험, 그걸 기억하나 보다.


지난주 배드민턴 모임에서 오른 발목을 접질렸다. 혼복팀을 상대로 한 낯선 경기를 하며 무리를 하다가 점핑 후 착지 불안, 발목이 꺾이는 부상이 생겼다. 다행히 곧바로 넘어져 큰 부상이 되진 않았다.
그날 밤, 집에서 엄마는(대외적으로는 '어머니'라 하지만 집에서는 아직도 '엄마'라 부른다) 얼음을 챙겨 주머니를 만드신다. 사소한 부상인데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민망하여 굳이 뿌리치고 잤다가 이튿날 아침 후회와 함께 더 민망한 부탁을 해야 했다. "어제 그 얼음주머니 좀 도로 주세요, 아무래도 해야 할 것 같아..."
후회는 두 가지였다. 결국 하게 될 냉찜질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동안 얼음주머니를 챙겨 오신 엄마 손은 얼마나 민망하고 서운했을까. 어젯밤 하랄 때 했으면 이렇게까지 붓지는 않았을텐데...

그 냉찜질 덕인지 다소 가라앉은 통증과 부기에 안도하며 한 주를 보냈는데, 오른 발목 탓에 부자연스런 걸음으로 무릎까지 저려오는 것이 심상치 않다. 그래서 오늘은 남들이 권하던 '침'을 맞아 볼 요량으로 한의원을 찾은 것이다.


시술장소로 옮기는데, 드디어 여성(?)이 나타났다. 낯이 익다.
- 낯이 익죠?  서진이 엄마예요.
" - - - "
"서진이라구요? 서진이가 누구죠?"
- 소진이요, 미소... 미소엄마예요.
"아~ 소진, 정소진~ "
- 원장님이 아프지 않게 부황 뜨라는데 일단 피부에 침 같은 촉을 쏴서 구멍을 내야 하는거라서 안아프게 할 방법이 없네요...하하



그렇게 침과 뜸과 부황을 마치고 접수창구 옆에 있는 족욕실에서 족욕 하던 중에 옆자리 할머니와 저쪽 창구의 사무장이 말 주고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거다. 장날, 한의원 내부 곳곳을 가득 메운 시골할머니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동생을 떠올린다. 그도 남원 어느 병원 검사실에서 수도 없이 많은 할머니들을 이렇게 만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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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9 17:34 2007/09/0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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