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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편지



[인월중고등학교 앞산, 덕두봉]



하늘이 가을처럼 높고 푸른데,
저 멀리 지리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잡힐 듯 뚜렷한데,
발 아래 교정엔 녹으며 얼며 굳어진 흰눈에 눈이 부시고
앞산 덕두봉 머리도 잔설이 남아 귀를 스치는 바람결이 칼날 같게 합니다.
인월의 겨울이 이렇지요.

처음 오던 2002년 2월 어느날에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제각각 어느 대학 캠퍼스에서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또 군입대한다고 순서를 다투며 청춘의 말미를 꾸려가는 이들이
그때는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고 싶은 중3학년,
처음 만난 인월 아이들이었습니다.

한 해, 두 해... 여섯 해를 보내는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추억을 안겨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중1,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채
무엇 하나 두려워 하지 않는 당당함으로 발랄하게 재잘거리던 꼬마들이
여자, 남자로 목소리 찾아가며 제 나름의 성숙세를 치르던 모습들이
대견하기도 마음 아프기도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내가 그랬듯이 그들 역시도 지나고 나면 그리운 시절일 것을
힘들게 여기며 아파한 시간도 있지요.

이제 나는 지난 6년, 8개 학년을 마음에 담은 채
몸을 떼어 떠나려 합니다.
줄줄이 떠오르는 얼굴과 귓가에 다시 들리는 그때 그 말들이
하나하나 너무도 선명하여 되새김하며 밤을 새울 것이지만,
한 날 두 날, 야밤에 내려가
고독한 소주 한 병 비우곤 하던 소재지 동네의 밤 불빛도 어른거리고,
되돌아 홀로 오르던 교회 옆, 묘지 옆 오솔길이 쓸쓸히 떠오르지만,
이젠 다 지난 얘기,
무척이나 소중하여 뜨거운 눈시울로 떠올릴 애틋한 추억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한켠에 비껴 솟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예쁜 웃음으로 나를 보내 줄 얼굴들이 환한데
고개 돌린 저 몇몇 얼굴들이 정말로 가슴 아프네요.
먼훗날, 세월이 켜켜이 쌓일 만큼 오랜 뒤에
우리 마주보고 웃을 수 있다면, 지금 이대로도 견딜만 하겠지요.
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떠올라 잠시나마 숨을 멈추고 하늘을 보는
그런 우리일 수 있을까요...

마냥 즐거웠던 기억도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도
세월 지나 회상할 때는 모두가 가슴 저리게 고운 추억이 될 것임을 믿고,
또,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한 언젠가 다시 만날 것임을 굳게 믿기에
손을 모으고 숙연히 당부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항상 건강하고 곁에 있는 서로를 사랑하며
어떻게 만나더라도 서로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떳떳한 삶을 꾸려 나가길 빕니다.
그때의 모습이 어떻든 나는 여러분을 사랑할 것입니다.
비록 최선을 다하지 못하여 당당하게 마주 서길 망설이는 그 모습까지도
나는 사랑할 것입니다.

인월중.고생 여러분 그리운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                 2008년 2월 14일 새벽에 관사에서

[관사에서 교정의 밤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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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1 00:16 2008/01/3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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