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구두,
익숙함, 편안함, 또는 게으른 습관, ... 또는 집착.
구두를 닦다가 잠시 손을 멈추고 구석구석 따지듯 살펴본다.
그러는 모습이 새 신발 사듯 한다.
이 갈색 구두는 유난히 물기에 약했다.
구두를 닦는 건 왁스이고 왁스는 물기를 밀어낼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창을 튀기면 그 얼룩이 못봐줄 정도인,
그래서 한편으로 '이 가죽은 대체 왁스를 어디로 먹는거냐..' 하던 신발.
비 오는 날에 신으면 어김없이 '품격'을 상실하고서는 최악으로 지저분해지는 신발,
그런 이 구두가 무려 4년째 내 발 곁에 살아남아 있다.
(4년이 뭐 별거냐고?...)
[바로 요놈이다.]
뒷굽이 닳아 바깥쪽이 내려앉은 이 구두가 수년에 걸친 내 걸음걸이의 틀어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음에도, 물 진창을 디딜때마다 생겨나는 얼룩에 온갖 추접을 다 떨어도
아직 내게 남아 다른 신발 보다 더 자주 신게 되는 건...
언젠가 심하게 얼룩진 날,
버릴까 살릴까 고민끝에 신발 표면에 방수처리 해볼 욕심이 생겼다.
겉에 등산화용 방수크림을 펴바르고 말린 뒤 식용유를 덧발랐다.
결과는...
개떡. 신발 표면에 개떡이 져서 앞꿈치 굽혀지는 주름마다 껍데기처럼 일어나는 '개떡'.
결국 칼로 죄다 긁어내고 가벼운 왁스만 발라 맑은 날 마른 곳에서만 신는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구두를 챙겨 적다보니
90년 신임시절부터 함께 해온 분신 같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체로 10여 년은 훌쩍 넘었고 가장 장수하고 있는 건 19년 되는 자명종 시계구나...
통기타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백운 처총회 속리산 여행 때(1991) 밍숭맹숭한 촛불나이트를 위하여 산골짝에서 보은 시내까지 택시로 나와 늦은 밤 문 닫지 않은 악기사를 찾아 얼결에 사서 멋지게 써먹었던 거.. 아직까지 건재하다.